최승훈 경희한의대 교수

기사입력 2011.05.17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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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의 국제표준 제안한 한국측 주장에 긍정적 반응
    ISO/TC249 2nd Plenary Meeting in The Hague - 2

    5월 3일

    오늘은 주로 이미 제안된 NWIP의 제안자로부터 설명을 듣고 질문과 답변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번 회의에서 특별히 한국측에 부담이 되었던 NWIP는 중국측이 제안한 인삼종자와 파종방법에 대한 국제표준이다. 중국은 이미 1986년에 인삼종자에 대한 국가표준(GB)을 만들었다.

    그에 비해 인삼으로 명성과 함께 가격면에서 특혜를 누리고 있는 한국은 그에 대해 수수방관 속수무책이었다. 중국이 인삼종자의 국제표준을 만들게 된다면 앞으로 한국 인삼은 그들에 대한 우월적 차별성을 상실하게 된다. 그들은 사전 포석으로 한국의 농촌진흥청 인삼전문가들과 이미 교감을 가진 바 있고 그 내용을 슬라이드에서 소개하고 있다. 한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그 제안에 대해 적극적인 지지의사를 표명하였다.

    침의 국제표준에 대한 중국측 발표는 중국중의과학원 침구연구소의 황롱샹 박사가 하였다. 그는 필자가 WHO에서 주도했던 경혈위치 국제표준 개발과정에서 그의 스승인 왕쉐타이 교수와 함께 중국을 대표하였던 실력 있는 학자로, 자신의 연구를 위해서 주요 보직을 사양할 정도로 학자적 소신이 뚜렷한 인물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국가적으로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사업인지라 어쩔 수 없이 나와 있는데, 회의 내내 그의 표정은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또 이번 회의에서 거의 전면에 나서지는 않고 필자와 함께 CAG 회의에만 참석하였던 천카이셴 상해중의약대학 총장도 그와 비슷한 경우로, 그러한 학자들을 보는 마음이 동병상련으로 착잡하다. 천 총장은 몇 안 되는 중의약계 출신의 중국학술원 회원이며 명성이 높은 학자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회의에 참석하고는 있으나 불편한 심기는 쉽게 읽을 수 있다. ISO회의는 WHO회의하고도 분위기가 다르고, 학술회의와는 더욱 거리가 멀다. 오전의 마지막 순서로 한국의 침에 대한 표준 제안을 한국한의학연구원의 최선미 박사가 하였다. 능숙한 영어는 아니지만 다소 직설적이고 소박한 표현은 오히려 진정성 있게 받아들여져 각국 대표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을 수 있었다.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최호영 교수, 정채빈 이사와 함께 회의장 근처에 있는 Mauritshuis미술관에 갔다. 막간을 이용한 眼球 淨化의 시간이다. ‘Spice of Life’라는 주제로, 렘브란트와 루벤스를 비롯한 17세기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화가들의 작품전시회이다. 모든 작품들이 최근 과학적인 복원과정을 거쳐 이제 막 완성된 그림처럼 생동감 있는 화면으로 드러나 있다. 수백년의 역사와 전통이 현대과학의 힘으로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우리의 한의학도 그렇게 할 수 없을까? 특별히 우리 모두의 눈길을 끈 작품은 Johannes Vermeer(1632~1675)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1665년경·사진)였는데, ‘네덜란드의 모나리자’로 불릴 만큼 보는 이에게 깊은 신비감과 감동을 준다.


    오후에는 중국측에서 제안한 WFCMS 번역전문위원회 왕퀘이 위원장의 “International Standard Chinese-English Nomenclature of TCM”, 중국중의과학원 중의약신식연구소 췌이멍 소장의 “Categorical Structures of Clinical Terms of TCM”, 그리고 또 중국중의과학원 중의임상의학기초연구소 루아이핑 소장의 “Coding System of Herbal Medicine”에 대한 발표와 질의 응답이 이어졌다.

    이 제안들은 모두 Informatics(정보학) 분야에 속하는데, 작년 1차 총회에서 주요 범위로 결정했던 침구와 한약의 안전성과 품질과는 다른 분야로, 중국과 비서국에서 의도를 가지고 제안하고 있다. 즉 이 분야를 장악해야만 전통의학 국제표준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적으로 이들에 대해 중국은 오랜 세월에 걸쳐 상당한 준비를 하여 왔으며, 이번 총회의 중국측 참가자들도 이 분야에 상당한 무게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분야는 WHO와 의료정보학을 다루는 ISO/TC215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어서 최근 상호간 업무의 중복과 불필요한 경쟁을 피하자는 여론이 일고 있다. 이틀간 이 회의에 참석했던 WHO의 Ustun 박사도 왕퀘이 위원장과 췌이멍 소장이 제안한 두 국제표준에 대해 WHO는 명백하게 반대하고 있음을 밝힌 바 있다.

    오늘의 발표내용 가운데, 특히 WFCMS에서 온 왕퀘이 위원장의 중의학 기본용어의 국제표준 제안에 대해서는 내일 열릴 3조 분임토의에서의 올바른 결정을 위해 회의 참가자들에게 배경설명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래서 오늘 새벽에 일어나 준비했던 슬라이드를 오후의 막간에 발표할 수 있도록 의장에게 요청하였다.

    내용은 주로 필자가 WHO에서 International Standard Terminology(IST)를 개발했던 과정에 관한 것이었다. 특히 그 과정에 중국 국가중의약관리국 간부와 전문가들이 상당수 참여하였고, 오히려 일본측이 IST로 말미암아 중의학의 영향을 받을 것을 우려해 한 때 불참을 선언했던 에피소드도 소개하였다.

    당시 일본측의 대표역할을 했던 쇼와대학의 도리이츠까 교수는 일본이 IST의 개발과정에 참여한 것에 대해 일본동양의학회의 보수적인 인사들로부터 공격을 받고 퇴출에 가까운 징계를 받는 곤욕을 치르기도 했었다. 도리이츠까 교수는 이번 회의에 역시 일본대표로 참석하였고, 나중에 그는 필자의 발표를 들으면서 특별한 감회가 있었다고 토로하였다.

    2006년 당시 일본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혼자 일본 동양의학회를 방문해서 16명의 임원들과 담판을 벌인 적이 있었다. 오후 4시 반에 시작하여 밤 11시 반에 끝난 그 날 회의에서 필자는 “만약 일본이 WHO의 IST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마치 고양이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나는 격으로 결국에는 중국 정부와 인민위생출판사의 지원을 받고 있는 WFCMS의 용어 표준을 만나게 될 것이다”라고 설득하였었는데, 바로 그 WFCMS의 용어표준이 오늘 NWIP로 제안된 것이다. 끝이 없이 계속해서 꼬리를 문 국제 전통의학계의 얽히고 설킨 현안과 악연은 지금도 여기 헤이그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2007년에 WHO의 IST가 출판되자마자 호주 RMIT대학의 요청으로 멜버른에서 출판기념회를 했었는데, 당시 호주정부의 대표로 축하차 참석했던 현 ISO/TC249의 의장 David Graham과 같이 IST를 들고 찍은 사진은 참석자들로 하여금 웃음과 함께 특별한 인상을 주었던 것 같다. 그 동안 의장인 David와는 피차 다소 불만과 긴장이 있었는데, 그런 인연에 대한 추억으로 인해 상호관계에 상당한 진전이 이루어진 셈이다. 그리고 마지막 슬라이드는 “同舟共濟”라는 문구로 마무리하였다. 약 2주 전 후진타오 주석이 중국 하이난다오에서 열린 보아오(博鰲)포럼에서 아시아인들이 하나가 되어 공동협력하자고 선언했던 “同舟共濟” 정신을 상기시키면서 중국측의 막무가내식 밀어부치기를 지양하고 주변 국가들과 함께 조화 협력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우리 모두는 ISO/TC249라는 한 배를 탔고, 그래서 함께 배를 저어가야 한다는 취지였다. 슬라이드 가운데에는 며칠 전 영국의 Telegraph에서 낸 기사로 중국의 “Top 10 food scandal”에 관한 기사내용이 있었는데, 중국측을 너무 공격하고 압박하는 것 같아 슬라이드 감추기로 처리하여 보여주지는 않았다.

    필자의 발표가 끝나고 TMB에서 파견한 Timothy Hancox의 ISO의 규정에 대한 설명과 질의 응답이 이어졌다. 대부분의 참석자들이 ISO에 대해서 경험이 많지 않기 때문에 비교적 유용한 시간이었다. 한국 대표들은 얼마 전 서울에서 ISO에 대한 사전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비교적 회의 참여에 유리한 입장에 있었다.

    이어 새 Liaison Organization으로 ETCMA(European Traditional Chinese Medicine Association)가 추천되었고, 그 협회의 회장이 설명을 하였다. 중국과 비서국이 WFAS와 WFCMS에 이어 또 다른 전위세력을 세우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회장의 설명이 끝나자 뜻하지 않게 네덜란드의 중국계 대표가 발언을 신청하여 그 협회의 대표성을 문제 삼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졌다. 그는 중국인 2세로 그 협회의 대표성을 신랄하게 물고 늘어졌다. 그의 발언으로 인해 ETCMA 회장뿐만 아니라 비서국과 중국측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고, 오히려 비서국에 대한 불신만 증폭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그런 황당한 해프닝에 대해 다른 나라 대표들은 불쾌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자 일본 대표인 모토 교수의 다소 순진하고 엉뚱한 질문이 이어졌다. “그 협회에 대해 중국정부에서 지원을 하느냐?” 그러자 즉각적으로 국가중의약관리국의 주하이동이 맹렬한 비난을 쏟아놓는다.

    5월 4일

    오늘은 어제 제안된 NWIP에 대한 조별 토의를 거쳐 그 제안의 필요성과 통과 여부를 결정하고 향후의 진행을 위해서 WHO나 ISO/TC215와 같은 유관 국제기구들과 어떻게 협력할 것인지 그리고 바로 투표로 넘길 것인지에 대한 결정을 하는 중요한 과정이다. 필자가 속한 3조는 의료정보를 다루는데, 의료정보는 작년의 총회에서 우선순위가 떨어지는 것으로 합의한 바 있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다루지 말았어야 할 분야이다.

    그러나 중국과 비서국에서 의도를 가지고 밀어부쳐 분임회의의 한 조로 설정되었다. 전날 필자에게 3조의 좌장역할이 맡겨졌기 때문에 필자는 중립적인 역할을 하여야 하고, 개인이나 한국측의 의견을 발언할 수 없어서 다른 조에 배속되었던 이수진 교수를 3조로 이동시키고 3조에 참여하는 다른 나라의 대표들과도 기본적인 방향에 대한 사전 교감을 해두었다.

    아침식사를 하러 호텔식당에 갔는데, 평소보다 대부분 이른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다. 중국을 비롯한 각국 대표들의 표정이 긴장되고 심각해 보이기까지 한다.
    오늘의 분임토의가 이번 총회를 실질적으로 결산하는 중요한 과정임을 모두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WFCMS나 중의과학원의 중의약신식연구소 등에서 수년에 걸쳐 총력을 기울인 표준들이 다루어지는 3조를 좌장해야 하는 필자로서는 더욱 긴장이 된다. 아니나 다를까, 3조에는 중국측의 유력한 인사들과 한결같이 중국의 전위역할에 앞장섰던 노르웨이와 스페인 대표들도 전진 배치되어 있다. 필자는 먼저 회의의 안건과 진행과정을 설명하고, 회의 내용을 기록할 서기를 뽑았는데, 미국의 Marilyn Allen(‘Acupuncture Today’편집인)이 자원하였고 모두가 그녀를 성원하였다. 회의에서는 첫째 주제로 WFCMS의 왕퀘이 위원장이 용어표준에 대해 설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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