論으로 풀어보는 한국 한의학 (2)

기사입력 2011.02.22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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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남일 교수(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1463년 12월27일 조선 세조는 ‘醫藥論’이라는 제목의 글을 지어서 任元濬에게 주석을 부탁하고 이를 인쇄하여 반포하도록 한다. 韓繼禧, 盧思愼, 兒宗 등에게는 보여주기만 하고 바로 任元濬에게 반포하도록 한 것이다. 무언가 세조 자신의 의약에 대한 정책적 의지를 표명하는 순간인듯 하였다. 수년 전부터 『醫方類聚』의 교정을 진행시키면서 이 책의 간행에 강력한 의욕을 보였던 그가 보름 정도 지난 1464년 1월11일에 이 책의 교정에 소홀했다고 판단된 74명을 무더기로 징계한 것을 생각할 때 醫藥論의 반포는 무언가 『醫方類聚』 간행을 위한 환경 조성을 위한 사전 정리의 느낌을 준다(안상우, 『醫方類聚』의 서지학적 연구, 한국의사학회지, 1999에 저간의 정황을 잘 묘사하고 있다).

    『세조실록』에 나오는 의약론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만약 기운이 다하고 마음이 喪하여 人理가 이미 기울어졌을 때에는 藥을 쓰지 않는 것만 같지 못한 것이다. 무엇을 8종의 醫員이라고 하는가 하면 첫째가 心醫요, 둘째가 食醫요, 셋째가 藥醫요, 넷째가 昏醫요, 다섯째가 狂醫요, 여섯째가 妄醫요, 일곱째가 詐醫요, 여덟째가 殺醫이다.”

    지면 관계상 여기에서 논하고 있는 여덟 종류의 의사를 요약하면 心醫는 병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또한 그 마음을 움직이지 않게 하는 의사, 食醫는 입에 맞도록 먹게 하는 의사, 藥醫는 약먹기만 권하는 의사, 昏醫는 헤매는 의사, 狂醫는 조심성이 없는 의사, 妄醫는 약이 맞는지 틀리는지도 모르는 의사, 詐醫는 아무 것도 모르며서 의사 흉내내는 의사, 殺醫는 잘난체 하는 의사이다.

    세조가 이러한 의사의 윤리문제를 들고 나온 것은 몇 가지 측면의 醫史學的 의의가 엿보인다. 먼저, 의사의 전문성의 강화이다. 국가적 부흥책에 힘입어 세종시대부터 부흥된 의학은 이제 의사의 수준을 관리해야 할 필요성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둘째, 의사들의 도덕성에 대한 문제 제기이다. 일찍이 1456년(세조 2년)부터 시작된 醫書習讀官의 제도는 의학에 입문하는 계층이 넓어지게 되는 기폭제가 되었고, 이에 의료인의 도덕성에 대한 지침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게 된 것이다. 셋째, 여덟 종류로 세분한 의사의 종류는 그대로 의사의 수준을 드러내고 있어서 당시 의학의 지향점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心醫를 가장 위에 두고 있고 나머지 의사들은 치료의 수준에 따라 뒤로 갈수록 형평없는 의사로 취급하고 있다. 食醫나 藥醫까지는 나머지 다섯 종류의 의사들과 구별되는 그런대로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의사이다. 그러나 이 두 종류의 의사마저도 心醫에 비한다면 부족한 점이 많다.

    心醫에 대해 세조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心醫라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항상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도록 가르쳐서 病者가 그 마음을 움직이지 말게 하여 위태할 때에도 진실로 큰 害가 없게 하고, 반드시 그 원하는 것을 곡진히 따르는 자이다. 마음이 편안하면 기운이 편안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병자와 더불어 술을 같이 마시고 깨어나지 않은 자가 있다면 이것은 心醫가 아니다.”

    食醫나 藥醫는 음식이나 약물로 제대로 병을 치료한다는 점에서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고는 인정하지만, 病者의 감정을 곡진히 이해하고 편안하게 해주지 못한다면 단순한 전문인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心醫는 病者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인격까지 갖춘 의료인이기에 세조가 권장하고 싶었던 것이다.
    세조가 지향하는 최고의 의사는 바로 ‘心醫’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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