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훈 교수

기사입력 2011.01.07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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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ridge Over…”(東武의 꿈)
    WHO Meeting on the ICTM

    2015년부터 전 세계적으로 활용될 ICD-11에 한의학의 진단명을 포함시키는 준비 작업을 위하여 지난해 12월 7일부터 10일까지 일본 도쿄의 게이오대학 기다사토회관에서 ‘WHO Meeting on the 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Traditional Medicine(ICTM)’이 열렸다.

    ICTM 프로젝트는 필자가 WHO/WPRO(세계보건기구/서태평양지역사무처)에 전통의학 고문으로 재직하는 동안 2006년 6월 서울회의를 시작으로 추진했던 표준화작업의 일환으로 현재는 WHO/HQ에서 수용 진행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번 회의에는 각국의 전문가 20명을 포함하여 모두 50명 정도가 참석하였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필자와 박경모 교수가 대표로, 게이오의대에 교환교수로 가 있는 사상의학 전공의 김종원 교수가 옵저버로 참석했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3~4명 정도의 정부 대표나 협회 파견 전문가들을 포함한 6~7명이 참석했다.

    이 프로젝트를 위하여 한·중·일 세 나라가 각기 100만 불 이상 기부하기로 하였는데, 우리나라는 2010년에 10만 불, 그리고 향후 3년에 걸쳐 30만불을 제공키로 하였으며, 중국 정부가 최근 120만불을 기부하기로 결정하였음을 대표로 참석한 쟝샤오레이가 개회식상에서 의기양양하게 발표했다.

    현재 준비 작업을 하고 있는 ICD-11에는 19,000 개의 양방 진단명이 입력되고, 전통의학은 그 중에서 Chapter 23을 배정받아 한·중·일 세 나라에서 제시한 400~900개 가량의 병명과 證名이 들어갈 예정이다. ICD-11의 Chapter 23과는 별도로 ICTM에는 분량 제한 없이 한·중·일 세 나라에서 제시한 진단명이 모두 포함된다. ICD-11의 Chapter 23은 ICTM의 다이제스트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12월 6일/하토야마 전 수상 등 ICTM 큰 관심

    회의는 7일부터 정식으로 시작되지만, WHO 담당자와 각국 대표들은 하루 전인 6일 정오 숙소인 도쿄돔 호텔 로비에서 모여 후생노동성으로 가서 일본의 ICD 담당 간부들과 합동연석회의를 갖고, 다시 도보 거리에 있는 프레스센터로 자리를 옮겨 ICTM에 대해 일본 국내외 기자들을 대상으로 기자회견을 하였다.

    WHO/HQ측의 간결한 설명을 시작으로 한·중·일 세 나라 대표들의 발표가 있었다. 필자에게는 ICTM과 관련된 WPRO의 경험과 double coding에 대한 회견 요청이 있었는데, 한국에서 현재 활용되고 있는 KCD-OM3가 ICD-11 전통의학 분야의 좋은 모델이 될 것임을 강조했다. 발표가 끝난 다음 외신을 비롯한 각 신문사 기자들의 질문과 답변이 이어졌다.

    1시간 반에 걸친 기자회견이 끝나고 프레스센터 맨 위층에 마련된 리셉션에 참석했다. 그 자리에는 한방의학의 열렬한 지지자인 하토야마 전 수상과 스즈키 문부과학성 차관, 후생노동성 차관, 테라사와 일본동양의학회장 그리고 일본의사협회장 등이 참석했다. 참석 인사들의 면면으로 미루어 일본 정부의 ICTM에 대한 관심과 일본동양의학회와 게이오대학의 위상을 짐작케 한다.

    12월7일/ICTM 개회식과 아젠다 채택

    오전에는 개회식과 회의에 대한 설명과 아젠다 채택 등이 있었고, 오후에는 집중적으로 ICTM의 content model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그리고 ICD-11은 스탠포드대학팀이 개발한 ICD Collaborative Authoring Tool(iCAT)로 구현되기 때문에 개발팀의 대표인 스탠포드의대의 Mark Musen 교수가 iCAT에 대해 설명하였다. 각국의 대표를 포함한 참석자들은 일종의 학습과정을 거친 셈이다.

    12월 8일/한국의 사상의학 적절한 위치 확보

    필자가 주재했던 오전의 Classification 그룹 회의에서는 content model에 대해 끊임없는 논쟁이 벌어졌다. ICTM의 content model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중국측 전문가들의 고집스런 주장과 이를 답답하게 생각하는 다른 전문가들 사이의 논쟁이 지루하게 이어졌다.

    또 예상대로 중국측에서는 “왜 다른 체질의학체계들이 있는데도 한국의 사상의학만 ICD-11에 포함되는가”라고 거칠게 물고 늘어졌으며, 이에 대해 박경모 교수가 논리적으로 방어함으로써 결국에는 사상의학이 적절한 위치를 확보하게 되었다.

    한편 중국 대표들은 한의학 이론을 content model에 모두 집어넣으려 막무가내 주장을 하고 있다. 내용적으로는 한국이나 일본측도 이견이 없었으나, ICD-11의 content model이 교과서와는 다르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 문제였다.
    그나마 중국측에서는 쟝샤오레이가 content model에 대해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회의 과정에 다른 중국 전문가들을 설득하느라 애를 쓰고 있다. 그들 사이에서는 자기들끼리도 수시로 큰 소리가 오고간다. 아침부터 회의장에서 평행선 같은 논쟁을 벌이다 보면 머리가 지끈지끈하면서 어느덧 저녁 시간이 되고 하루는 저물어간다.
    오후 회의가 끝나고 일본측이 마련한 도쿄만에서의 houseboat 만찬과 여흥은 2007년 3월에 있었던 WPRO 주관의 ICTM 회의 당시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12월9일/八綱과 腹證 content model에 포함

    아침에 호텔에서 회의장인 게이오의대로 전철을 타고 가는 동안 WHO측 실무자인 Dr Robinson에게 WHO/HQ와 한국 보건복지부와의 교감을 강조했다. 이번 회의에 한국 정부측에서는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 불필요한 오해와 작업진행상 차질이 빚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침 회의는 호주 RMIT대학의 Charlie가 만든 어젯밤 houseboat 여흥에 대한 보고를 하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였고, 이어 intervention(시술) 분야를 책임지고 있는 Dr Peter de Smet가 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Health Interventions(ICHI)에 대해 소개했는데, intervention은 2월 초에 열릴 마닐라회의에서 본격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쉬는 시간에 중국의 샹전과 췌이멍이 필자에게 다가와서 八綱을 content model의 13번째 항목에 넣을 수 있게 도와 달라 요청하였고, 필자는 협조해줄 터이니 쟝샤오레이를 통해 제안하라고 충고했다.


    회의는 다시 속개되고, 쟝샤오레이는 “Content model에 증상과 징후 항목이 이미 있는데 腹診을 별도로 설정하는 것이 불합리하지 않느냐”고 물고 늘어졌다. 바로 일본측이 뒤집어진다. 腹證은 일본측의 아킬레스건이다. 결국 논란이 되었던 八綱(Eight principles)과 함께 腹證은 ‘Fuku Sho’라는 일본식 발음 그대로 content model의 맨 마지막 13번째 항목인 진단 기준(diagnostic criteria)에 겨우 자리를 잡았다. 한·중·일 세 나라가 모두 만족할 만한 구도를 잡은 것이다.

    회의 일정을 앞당겨 아침 11시부터 Dr Ustun이 ICD-11 23장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비유를 통한 설명과 임기능변에 능하다. “한·중·일 세 나라가 제시한 진단명은 공집합으로 미키마우스 그림이 될 것이다. 교집합 형태의 로케트는 그 안에 있고. 그래서 ICD-11의 23장은 미니 미키가 되고, 그를 포함하는 ICTM은 큰 미키가 된다.” 매우 적절한 비유이다.
    미키마우스 그림에는 중국 50+300, 한국 KCD-OM3 358, 일본은 50개 정도의 진단명이 포함된다.

    “오늘 중으로 각국이 진단명 리스트를 제출하고 상위 그룹 명칭을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 있었고, 한국은 “이미 KCD-OM3를 파일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바로 제출하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빠진 것은 없나?” “중복된 것은 없나?” “3월15일까지 각 entry의 완정한 content model이 있어야 한다.” “최대한 빨리 각국에서 content model의 알파 버전을 review할 전문가 10~100명 명단을 제출해 달라.” “1월10일부터 3월15일까지 제네바에서 일할 managing editor를 각국에서 한 명씩 물색해서 보내 달라.” 회의는 숨 가쁘게 마무리를 향해 가고 있다.

    3년 전 불렀던 “Bridge Over Troubled Water” 를 기억하고 있던 친구들의 요청으로 8일 만찬에서 그 노래를 다시 불렀다. 우리들의 헌신과 노력이 과거와 현재를 잇고, 동과 서를 잇고, 인간과 인간을 잇고, 나라와 나라를 잇는 다리가 되기를 기원하는 마음이다.

    백여년 전 이제마 선생이 “백년 후에 사상의학이 온 세상을 풍미할 것”이라고 하셨다. 사상의학이 ICD-11에 실리고 세계적으로 활용됨으로써 이제 그의 꿈이 현실로 다가오는 벅찬 감격을 우리 한의계 모두가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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