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미숙 교수

기사입력 2010.12.03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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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섭(通涉;consilience)과 코웍(co-work)의 시대를 살아가는 고립무원(孤立無援) 한의사

    1998년 에드워드 오스본 윌슨의 저서를 통해, 또 국내에서는 윌슨의 제자인 이화여대 최재천 교수를 통해 알려진 통섭(通涉;consilience)이라는 개념은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연결하고자 하는 통합 학문 이론에 사용된 단어로 ‘큰 물줄기를 잡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나는 이 ‘통섭’이라는 단어를 볼 때마다 ‘협진’이라는 한의계의 핫(hot)한 아이템이 늘 함께 떠올랐다. 협진의 가장 큰 벽으로 소위 의과와 한의과간의 소통의 부재가 거론되고 있으나 ‘소통’이라는 말 자체를 하기 이전에 서로간에 뭐가 뭔지 알고 한 번 붙어서 싸워봐야 할텐데, 서로 갈등과 의심을 풀어헤칠 만한 완충지대로서의 플랫폼이나 있었던가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런 무대 위에서 싸우고 따지고 하는 과정이나 한 번 거쳐 보아야 그 다음으로 협력 혹은 협진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고 최종적으로 몸의 그리고 질병의 ‘큰 물줄기를 잡을 수 있는 의료계의 통섭’을 기대해볼 수도 있을텐데 말이다.

    그러한 통섭의 넘실거림이 가득한 의료현장은 얼마나 평화롭고 아름다울까?
    환자 : “디스크 수술을 했는데도 왜 여전히 다리가 저릴까요?” / 의사 : “척추수술실패 증후군(FBSS: failed back surgery syndrome)일 수도 있겠는데요. 1~2주 경과를 더 봐야 하니 일단 진통제를 복용하시면서 근처 한의원에 내원하셔서 침·뜸 치료를 좀 받아보는 게 어떨까요. 통증을 줄이는 데는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의뢰서를 써 드릴게요. 그 치료 이후에 다시 내원하세요.” / 한의사 : “진료의뢰서를 가지고 오셨군요. 아.. 수술을 받으셨는데도 저림이 있으시네요. 2주간 저희 한의원에서 치료를 받아보시고 경과를 함께 지켜보십시다. 이런 경우가 흔하시더라구요. 너무 걱정 마시구요. 아직은 실패 증후군으로 단정짓기에는 이를 수 있거든요. 약간의 후유증일 수도 있습니다. ”
    진정으로 협진의 지속적인 실패의 책임을 과연 한의학에 무지하고 한의사를 무시하는 의사들에게만 돌려야 할까? 우리가 어떤 치명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는건 아닐까?

    약국에서 약을 담아주는 종이봉투를 보면 뒷면에는 의레껏 협력병의원 명단이 있다. 그 명단을 보면 한두군데 약국을 중심으로 전문 분야가 다른 7~8군데 병의원이 모여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약국으로서는 근처에 있는 병원들을 한꺼번에 광고해줄 필요성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명단을 약봉투에 실어두는 것이겠고, 개인의원들 입장에서는 종합병원이 아닌 만큼 서로 전원, 의뢰, 협력할 일들이 소소하게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문득, ‘한의원이나 한방병원에는 협력병의원이 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한의사들이 필요로 해서 방사선과, 내과에 일방적으로 의뢰는 할 수 있겠지만 그런 경우를 ‘협력’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전에 근무했던 병원들에서도 협력한의원제도를 실시하여 한의원에 <○○한방병원 협력한의원> 동판을 제작하여 걸어주기도 하였으나 그 동판이 환자들로부터 신뢰를 얻는데 도움을 주었다거나 서로 환자들을 활발하게 의뢰를 했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 없고 그저그런 사업 중 하나로 유야무야 되었던 것 같다. 한의원은 한방병원으로 환자를 보내지 않고 한방병원 역시 한의원으로 환자를 보낼 리 없다.

    한의계야말로 제로섬 게임에 몰입

    특히나 요즘처럼 초진환자, 재진환자 한명이 아쉬운 시기에 말이다. 또한, 입원병실이 있다는 것 빼고는 한의원과 한방병원에 별다른 차이점을 찾아보기도 힘들다. 그저, 한의원 근처에는 협력병의원은 없고 경쟁자 관계의 한의원만 있을 뿐이다. 어느 누군가에게 진료를 의뢰받고 진료를 시행하고 또한 내가 진료했던 환자를 타 의료기관으로 전원한 경험이 많지 않을 한의사들에게는 코웍(co-work)이란 단어 역시 외계어로 받아들여질지도 모르겠다.

    2010년 11월15일 월요일 J 일보를 넘기다가 전면광고로 의료기관 광고가 3페이지나 실려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름아닌 한의원 2군데와 한방병원 1군데였다. 전면광고로 독자들의 시선을 확 사로잡을, 잘나가는 한방의료기관을 떠올리면 SSM(super supermarket)으로 불리우는 기업형 슈퍼마켓으로 동네슈퍼, 골목상점까지 싹쓸이하는 대기업들이 떠오른다.

    한의사 근처에는 한의사들 뿐이기에, 한의원 근처에는 경쟁 한의원 뿐이기에, 저런 멋지고 큰 광고를 보면 같은 하늘 아래 같은 면허를 가진 사람으로서 자부심이 느껴질만도 한데 묘한 감정이 피어오르는 것은 아마도 한의계야말로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잘나가는 한의원의 득점은 망해가는 한의원의 실점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한의원, 한방병원들의 전면광고를 발견할 때마다 폐업신고를 하고 있을 후배 한의사들의 한숨소리가 한꺼번에 들리는 듯하다. 한의사들끼리도 통섭하지 못한다. 코웍하지 못한다. 서로 뛰어난 개인기를 자랑질할 뿐이다. 먹고 사는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2010년 11월17일 KBS 9시뉴스에서는 대대적으로 디스크수술에 대한 심각한 후유증과 무리한 수술의 폐해를 다루었다. 그러면서도, 이○○ 의학전문기자는 수술의 대안으로 물리치료를 꾸준히 받으라는 안해도 될 당연한 말씀을 할 뿐, 절대로 한방 치료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척추만큼은 수술하지 말자던 J 한방병원 광고는 그저 광고일 뿐이었나? 척추질환의 한방치료가 아직은 보편적인 상식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거나 이○○ 기자가 의사 출신이라 ‘본능적으로’ 한방의 모든 것을 거부하고 있거나 둘 중 하나이겠지. 통섭과 코웍의 시대에 한의사들이 사회적으로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를 드러내주는 좋은 예 되시겠다.
    최근 7인의 한의사가 모여 1인의 한의사에게 뭔가를 배우는 모임이 5주간 진행되었다. 나는 7인 중 1명이었고 나이는 두 번째로 많아 보였다(나머지 5인은 영보이들). 7인의 학생 중 가장 나이가 많은, 개원가에 계신, 도곡동에 산다고 알려져 있는 분이 커피를 사들고 오시는데 이게 늘 두 잔인 것이다. 한 잔은 본인 것, 한 잔은 선생의 것. 그렇게 1주, 2주, 3주가 흘러가는 동안 영보이 5인과 나는 그 두 분이 홀짝거리는 모습을 보며, 또 소리를 들으며 상당히 불편한 3주를 보내야 했다.

    참다못한 나는 4주차에는 던킨커피를, 5주차에는 별다방 커피를 6잔씩 구입하고야 말았다. “니들만 입이냐? 우리도 입이다!”를 보여주기 위해서 말이다. 좀 유치한 작전이었지만 영보이들과 나는 흐뭇하고 묘한 동감의 미소를 공유하며 콩다방 라지사이즈를 홀짝거리던 그 강남 원장님을 째려볼 수 있었다. 본인 입에만 커피를 털어넣던 그래서 후배들에게 커피 6잔을 살 줄을 모르는 강남의 그 원장님, 중앙 일간지에 전면광고를 내고 그 광고 덕에 무수한 신환자들을 빨대처럼 쪽쪽 빨아드실 선배 한의사님들. 그들을 질투하는 건 내 안의 루저이즘 때문이리라. 그래도 화가 나는 건, 한의사들 주변에는 망해가는 한의사들 뿐이라는 점이다. 나와 내 주변의 한의사라는 옷을 입고 있는 님들을 말이다. ‘고립무원’ 2010년을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한의사들의 경지. 바로 고립무원이다.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우리를 진정으로 지지하고 걱정하고 도와주려는 사람, 한 사람도 없다.

    그러니 참으로 외로운 고립무원이다. <한방화장품, 알고보니 스테로이드 범벅><건강기능식품 1위 홍삼액, 알고보니 물엿 덩어리><현대판 화타, 김남수옹 알고보니 미스테리 투성이><중국산 한약재를 항암 특효약으로 판매한 지리산 할머니들 무더기 입건><무자격 침구사 수년간 불법진료로 5억 부당이득 취해><입원기록 위조 수억이득 챙긴 한방병원장 구속> ‘한방’ 타이틀 달고 터지는 불법적인 일들은 끝도 없이 일어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기본기 취약한 한의사들이 떠안는다. 피할 수도, 즐길 수도 없다면 대인배적인 정신을 발휘하여 큰 치마폭이라도 펴봐야 되는 거 아니겠는가? 한의학 음해세력이 존재한다면, 분명히 그 이유도 존재할 것 아닌가 이 말이다.

    주변사람들하고 소통하며 살자

    시대는 바야흐로 통섭과 코웍의 시대이다. 협력해야 하고 통합해야 한다. 동화와 소통을 이야기하는 이 시대, 한의사는 갈수록 고립무원의 큰 언덕에 올라가 혼자서 도(道)를 닦고 있는 건 아닌가? 한의사가 혹시 전통과 불통의 아이콘으로 상징되고 있지는 않은가? 녹용이 영원한 스테디셀러라면 한의원은 영원한 가내수공업으로 머물러 있을 것이다.

    먼지만 쓰고 앉아있을 골동품이 되기 싫다면, 박물관의 박제된 꿩으로 남지 않으려면 우리모두 날아가보자. 통섭과 코웍의 2011년을 향하여. 주변의 후배 한의사들을 불러 밥한끼 아니 5000원짜리 커피 한 잔이라도 나누어보자. 고립무원의 왕따가 되지 않으려면 주변 사람들하고도 소통좀 하고 살자. 2010년이 저물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유난히 시끄러웠던 한해, ‘첨단’ ‘첨단’ 소리에 유난히 기죽었던 한해였다. 새해에는 우리도 새로운 차원의 우리들이 되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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