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반의 자제들에게 의학 교육을 시킬 것을 건의한 의학자
‘태조실록’ 1393년 1월29일자 기록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외방(外方)에는 의약(醫藥)을 잘 아는 사람이 없으니, 원컨대 각도에 의학교수(醫學敎授) 한 사람을 보내어 계수관(界首官)마다 하나의 의원(醫院)을 설치하고, 양반의 자제(子弟)들을 뽑아 모아 생도(生徒)로 삼고, 그 글을 알며 조심성 있고 온후한 사람을 뽑아 교도(敎導)로 정하여, 그들로 하여금 향약(鄕藥)으로 백성의 질병을 고치는 경험방(經驗方)을 익히게 하고, 교수관(敎授官)은 두루 다니면서 설명 권장하고, 약을 채취(採取)하는 정부(丁夫)를 정속(定屬)시켜 때때로 약재(藥材)를 채취하여 처방(處方)에 따라 제조하여, 병에 걸린 사람이 있으면 즉시 구료(救療)하게 하소서.”
위의 의견을 제시한 사람은 당시 전라도 按廉使였던 金希善으로서 도평의사사에 보고하고 있는 것이다. 김희선은 조선 초기에 활동한 문신이며 의학자이다. 조선이 개국하는 해인 1392년에 호조판서로 활동을 시작하여 1395년 노비변정도감의 판사, 1398년 원주목사, 1402년 참지의정부사·서북면도순문찰리사, 1404년 대사헌·지의정부사, 1406년 형조판서 등 정치 일선에서 활동하였다.
김희선은 문신임에도 의학에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鄕藥濟生集成方’, ‘牛馬醫方’ 등이 그의 손을 거쳐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위의 인용문에서 볼 수 있듯이 조선 개국 이듬해에 국가적 의료전달체계에 대한 정책의 수립에 적극적이었던 것도 이러한 의학에 대한 깊은 이해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그는 1407년에는 부모의 질병으로 관직을 사직할 것을 간청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 김희선이 편찬에 간여한 ‘향약제생집성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