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초기 의관의 지위와 역할에 대한 전범을 만든 儒醫
역사상 형제가 모두 의원으로 활약하여 당대에 가문의 이름을 떨친 경우가 있다. 바로 楊弘達과 楊弘迪 형제이다. 형인 양홍달은 태조·정종·태종 3대에 걸쳐 35년간 典醫로 활동하면서 의사로 이름을 떨쳤다.
여러 차례 인생의 역경을 겪기도 하였지만, 그 때마다 주위의 도움으로 이를 극복하고 관직이 2품인 검교승녕부윤에 이르게 되었다. 1397년(태조 6년)에 왕의 질병에 신속히 입궐하지 않았다는 죄명으로 축산에 유배되기도 하였고, 1405년에는 賤女의 소생이라는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한때 해직되기도 하였다.
또한 1417년에는 왕의 병환을 치료하면서 제대로 여쭈어보지 않았다는 명목으로 門外黜送 당하기도 하였다. 1418년 성녕대군의 질환을 오진하여 죽게 했다고 하여 庶人으로 폐할 것을 刑曹에서 여러 차례 청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太宗이 이를 만류하여 위기를 넘기기도 하였다.
동생인 楊弘迪도 풍파를 겪기는 마찬가지였다. 1399년(정종 1)에 朝士와 같이 벼슬이 허용되었으며, 1408년(태종 8) 御府醫員으로 왕의 鍼灸에 착오가 있다 하여 순금부(巡禁府)에 갇힌 것이다. 그러나 이내 얼마 후에 다시 석방되었다. 1412년에는 檢校參議로서 공이 있다 하여 쌀 열석을 하사받았고, 이어서 檢校工曹參議가 되었으며, 原從功臣에 녹훈되어 田結을 상으로 받았다.
조선 초기 국가의 틀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양홍적의 행적은 이 시기 의관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에 대한 하나의 전범으로서의 역할을 하여 이후 조선의학의 발전의 원동력으로 작용되었다.
<- 양홍적의 행적이 나오는 ‘태종실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