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훈 교수

기사입력 2010.10.01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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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천유감

    청풍명월의 도시 충북 제천에서는 9월16일부터 한 달간 ‘2010 제천국제한방바이오엑스포’가 열리고 있다. 국내에서 개최된 한의약 관련 국제행사로는 가장 규모가 큰 행사라고 할 수 있다.

    이와 병행해서 아름다운 호반의 청풍레이크호텔에서는 같은 기간 내내 학술대회가 계속되고 있다. 예정된 8개의 학술행사 가운데 9월 17, 18일 양일간 열린 ‘봉한학 국제 심포지엄(International Symposium on Primo-Vascular System 2010’이 첫 테이프를 끊었다.

    국제 학술심포지엄에 참가하는 가장 큰 즐거움은 한 장소에서 해당 분야 석학들의 발표를 듣고 그들의 최신 지견을 짧은 시간에 집중적으로 학습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 논문이나 지상으로만 접할 수 있는 전문가들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그를 통해 예상치 않았던 일생일대의 기회를 잡기도 하고, 또 발표자와 참가자들의 면면을 통해 그 분야의 인맥과 현주소 등을 그려볼 수 있다.

    ‘봉한학 국제심포지엄’ 큰 관심 끌어

    한국을 위시하여 미국, 일본, 독일 등 12개국의 학자들이 참가한 명실공이 국제 학술회의로, 주제가 경락의 해부학적 구조로 추정되는 프리모 시스템의 암과 재생(regeneration)과의 관계여서 세간 특히 한의계의 관심을 모으기에 충분하다. 심포지엄에서는 주최측인 서울대 한의학물리연구실의 소광섭 교수와 그와 뜻을 같이 하는 연구자들의 발표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한국 한의계 학자들의 참여가 부진한 것은 아쉬웠지만, 원광한의대 안성훈 교수의 산알에 관한 연구와 포스터 발표를 한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 통합암센터 이상헌 교수의 연구는 한국 한의계를 대표해서 기초와 임상 분야에서 프리모 시스템과 관련된 매우 의미 있는 내용이어서 그나마 다행스러웠다.

    예상외 소득으로, 성균관대 서미나 교수와 이화여대 이영미 교수의 electrochemical oxygen microsensor를 활용한 경혈 탐측 연구는 매우 흥미로웠다. 경혈은 산소의 농도가 높다는 연구 결과를 보고하였는데,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WHO에서 수년에 걸쳐 경혈 부위의 국제표준을 만드는 과정에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심포지엄의 마지막 순서인 패널 토의에는 각 분야의 대표적인 학자들이 초대되었는데, 참가자 가운데 미국 텍사스 휴스턴 M.D. Anderson Cancer Center의 Department of Lymphoma and Myeloma 책임자인 Larry Kwak 교수는 암이 프리모 시스템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프리모 시스템이 암세포의 수송경로일 것이라는 점, drug delivery(약물 전달)에 있어서 프리모관이 전달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 프리모 시스템과 면역과의 관계 등 세 가지 잠재적인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제시하였다.

    ‘경락’ 입증 타 학문 분야서 연구 집중하고 있어

    그는 올해 TIME잡지로부터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가운데 한 명으로 선정된 인물이기도 하다. 다양한 질의에 대하여 소광섭 교수가 주로 설명하였는데, 그는 림프관 안에 프리모관이 있고, 5 stages of process가 있으며, edema나 림프관 관련 질병과 매우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였고, 이어 “한의학자들은 경락이 죽은 뒤에 사라진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저는 그것은 비논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도 그것을 보지 못했으니 사라지는 것을 어떻게 압니까? 단지 기능이 멈출 뿐입니다. 사라진다는 것은 논리적이지 않습니다”고 하였다. 이러한 논제들은 향후 한의학계의 관련 학자들과 진지하고도 치열한 논쟁이나 공동 연구를 통해 풀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이 학술심포지엄의 참가자 대부분이 침구경락 분야의 학자일 것이라는 추측과는 달리, 대부분 한의계 이외의 인사들이었다. 심히 유감스럽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설사 프리모 시스템이 경락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미 국내 일간지를 통해서 이 내용을 접한 국민 대다수나 제천에 모인 학자들은 대부분 프리모 시스템이 경락임에 수긍하고 있다. 파스칼의 도박 이론처럼, 프리모 시스템이 경락이 아니라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만약 프리모 시스템이 경락에 해당하는 해부학적 구조로 밝혀진다면, 그때 프리모 시스템과 경락이 무관하다는 입장을 계속 견지한 학자들과 우리 한의계는 아마도 난감한 지경에 빠지게 될 것이다.

    침구 활용의 전제가 되는 실체적인 구조로서 경락에 대한 주도권은 한의학계가 아닌 주변 학계에서 가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면 아니라”고 또 “나는 프리모 시스템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한다”고 공개된 학술의 장에서 분명히 논란을 벌일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날 학술회의 도중 잠깐 짬을 내어 약 30분 거리에 있는 엑스포장에 다녀왔다. 그 중에서 주요 행사장으로 꼽히고 있는 미래한방관의 3D입체영상관에서는 인기리에 ‘의학의 신대륙! 경락의 실체 발견’이라는 제목의 3D애니메이션이 방영되고 있었다. 주인공으로 프리모 인체탐사로봇, 빛의 여신 산알, 암세포, 그리고 한의학박사가 등장하는데, 그 박사는 여지없이 소광섭 교수와 닮음 꼴이고, 애니메이션의 마무리 멘트 역시 소 교수가 하고 있다. 그 애니메이션에서는 프리모 시스템을 경락으로 단언하고 있다.

    다시 돌아온 학술회의장에서는 여전히 프리모 시스템의 실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으며, 그 기능의 규명에 있어서도 아직 초기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번의 주제가 암과의 관련성이었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암 전문가들도 다수 참여했지만, 왠지 그들의 표정이 밝아 보이지는 않았다. 발표제목에 ‘프리모’를 끼워 넣기는 하였지만, 그들이 프리모와 암과의 관련성을 주장하기엔 아직 무리가 있고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의학계의 주류에서도 프리모 시스템 연구의 관건인 염색법 자체에 대해서 그다지 신뢰의 눈길을 주고 있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러나 50년 가까이 그늘에 묻혀 있던 김봉한 교수의 연구 성과가 이처럼 국제 학술회의에서 다양하게 재조명되고 있음은 놀랍고도 다행한 일이다.

    개회식에서 김정곤 대한한의사협회장이 축사하였듯이, 우리 한의계는 프리모 시스템에 대해서도 앞으로 활발한 연구를 하여야 한다. 그저 SCI 저널에 실리고 연구실적 높이는 데에만 혈안이 될 것이 아니라, 우리 한의학계가 이 분야에서 단연 앞서 나가야 한다는 의지와 사명감을 가져야 할 것이다.

    7월14일 미국 CBS 방송은 인터넷판 뉴스에서 “Chicken Came Before the Egg: ‘Scientific Proof’”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오랫동안 미스터리로 남아 있던 인류의 숙제가 영국 과학자들에 의해 드디어 풀리게 됐다”고 보도했다.

    뉴스의 주인공은 영국의 Sheffield대학과 Warwick대학의 공동 연구팀인데, 그들은 metadynamics라는 슈퍼컴퓨팅 툴을 이용해 계란의 구조를 분석했다. 그리고 계란 형성과정에서 OC-17로 알려진 ovocledidin이라는 단백질 성분이 계란 껍데기를 만들어내는데 필수적인 역할을 하고, 또 이 단백질이 닭의 난소에서 발견된 성분과 동일하다는 것도 밝혀냈다. 이 단백질 성분이 탄산칼슘(calcium carbonate)을 방해석 결정체(calcite crystals)로 바꿔 계란 껍데기를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첨단 과학 분석으로 “닭이 먼저다” 이미 확인

    즉, 닭의 난소에서 발견된 오보클레디딘이 있어야만 계란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닭이 먼저라는 이야기이고,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라는, 도저히 알 수 없을 것 같았던, 오랜 화두는 사라지게 되었다.

    이는 첨단 자연과학이 우리 인류의 상상과 기대의 한계를 넘는 성과를 내놓을 수 있음을 보여준 예이다. 그동안 한의계에서 가시적으로 확인할 수 없다는, 마치 미신처럼 성역시해 온, 경락이 이제 확연하고도 객관적인 모습으로 우리들에게 그 실체를 드러낼 날이 올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무리일까? 비록 물리학을 포함한 자연과학이 거들어 주었어도 2000년 넘게 경락을 바탕으로 침구 치료를 해 온 한의계가 그 연구의 중심에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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