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의도 법정’의 교훈 여론이 밀어주는 자가 승리한다
참으로 길고 힘든 투쟁이었다. 약사법 시행규칙 제11조 제1항 제7호의 “약국에서는 재래식 한약장 이외의 약장을 두어 이를 청결히 관리할 것”이라는 약사 한약취급 금지 조항을 보건사회부에서 일방적으로 삭제하여 1993년 3월5일 공표되면서 한의계의 투쟁은 시작되었다. 약사의 한약취급을 금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약사법 시행규칙 제11조 제1항 제7호는 1975년과 1976년 국회에서 ‘약사 한약취급 금지’를 촉구한 결의를 정부가 수용하여 1980년 3월22일 보건사회부령 제642호로 신설된 것이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마자 한의계에서는 전국 회원들이 각지에서 집회를 갖고 성명서를 발표하여 정부의 정책에 반대의사를 표명하였다. 전국의 한의대생들도 수업 거부를 시작하여 유급불사 투쟁으로 맞섰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법안의 무효화는 어려운 것으로 보였다.
몇일이 지난 1993년 3월31일 하오 7시반에 한국방송공사(KBS)에서는 ‘여의도 법정’이라는 공개방송이 열렸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공개토론을 벌여 이 문제에 대한 시청자 평결을 가리고자 하였다. 당시 ‘여의도 법정’은 사회적으로 문제거리가 되는 사안을 주마다 선택해서 공개토론을 벌여 엄선된 시청자들에 의해 찬성과 반대를 가려보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약사의 한약조제’를 주제로 한 이날 프로그램에서는 신기남 변호사가 재판장을 맡았고 한의계에서는 최환영 한의사협회 정책기획위원이 반대측 변론인으로, 참고인으로 서효석 한의사협회 부회장이 출연하였고, 약사측에서는 서울대 약대 심창구 교수가 변론인, 참고인으로 개국약사인 김양일씨가 나왔다. 이 자리에서 최환영 기획위원은 한약은 기본적으로 한의학적 기초지식을 확보한 전문가가 체질과 한방고유의 진단법에 입각한 진단을 한 후 기미론과 약제의 배합이론 등 방제원리에 따라야 한약조제가 가능하다는 의견과 한의약은 양의약과 달리 분리될 수 없는 이론적 특성이 있음을 주장하였다. 이어 약계의 대표로부터 약사가 한약조제를 행하고 있는데 대한 배경설명을 청취하였다.
서효석 부회장은 참고인 진술에서 한의과대학 6년 교육과정에서 한약조제를 위한 기초 및 임상 교육과정의 교육내용과 함께 약사가 약학대학 과정에서 수학했다고 주장하는 생약학의 과학적 분석이론으로는 한의학적 한약조제가 불가능한 점, 한약재의 감별능력 조차 없는 약사가 2, 3개월의 단기교육으로 한약조제를 자행함으로써 국민보건에 위해를 끼치고 있는 현황 등에 대해 설명하였다. 그리고 1970년대 이후 약사의 한약조제 행위가 성행하면서 1975년 제94회 정기국회의 약사법 부대결의, 1976년 제96회 정기국회의 의약품 조제에 관한 대정부 건의 등을 통해 약국 한약조제의 단속을 요청했지만 보건사회부가 행정적인 단속을 하지 않은채 편파적인 행정으로 일관함으로써 한의약 질서를 혼란시키고 있는 문제점 등을 상세히 진술했다.
이어서 재판부가 전국 네트워크에 연결된 각계각층의 배심원으로부터 평결을 총합하였다. 찬성은 “한약은 의약품이고 약사는 조제권이 있기 때문에 약사의 한약조제를 제한할 수 없으므로 약사의 한약조제를 찬성한다”, 반대는 “한약은 한의학 이론에 의해 다루어져야 하고 한의사가 취급하는 것이 바람직하므로 약사의 한약조제를 반대한다”로 하였다.
이에 대해 찬성이 21%, 반대가 79%가 나와 한의사를 지지하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왔다. 남자는 18 : 82, 여자는 24 : 76, 연령대별로는 20대가 16 : 84, 30대가 24 : 76, 40대가 18 : 82, 50대 이상이 29 : 71, 학력별로는 국졸 이하가 44 : 56, 중졸 이하가 28 : 72, 고졸 이하가 17 : 83, 대재 이상이 20 : 80이었다.
정치적 파워가 부족한 한의계의 입장에서 이와 같은 여론 조사의 결과는 큰 힘을 실어주는 것으로 이후의 투쟁의 자신감으로 작용되기에 충분하였다.
<- 여의도 법정의 여론조사결과를 보도하고 있는 1993년 4월5일자 보건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