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柳成龍과 의학 교류로 우의를 다진 鍼醫
1601년 柳成龍(1542~ 1607)은 자신보다 6살 아래면서 50세를 훌쩍 넘긴 南嶸이라는 인물을 천거한다. 나름대로 학문적 소양이 있었던 집안 출신이었지만 등용의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었던 그를 아낀 柳成龍이 눈여겨 보다가 천거하여 활용하고자 한 것이었다.
『선조실록』의 남영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면 눈에 띠는 점이 있다. 그를 ‘鍼醫’로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함께 鍼醫로 언급되는 인물이 許任, 金榮國 등 당시에 유명했던 醫員들인데다가 덧붙여 이 가운데 가장 먼저 그의 이름이 꼽히고 있다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아마도 柳成龍이 南嶸을 천거한 것이 의학적 능력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것이 분명해지는 대목이다. 특히 柳成龍은 『醫學入門』을 多讀하고 『鍼灸要訣』이라는 저술을 남길 만큼 의학에 조예가 있는 인물이 아닌가? 이 두 사람의 관계를 유추해본다면 아마도 南嶸과 柳成龍이 의학상의 교류를 오랜 기간하여 돈독한 우의가 있었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특히 南嶸의 의학적 학식은 두 사람의 관계에 중요한 공통 분모였을 것이다.
南嶸은 의관으로서 근무하면서 1605년에는 오위장과 진천현감, 다음해에는 양성현감이 되었고 다시 御醫로 들어와 근무하였다. 후에는 마전군수, 첨지중추부사를 지낸 후 1616년에는 음죽현감이 되어 임지에서 죽었다고 한다.
南嶸은 선조부터 광해군 년간에 궁중에서 이름있는 鍼醫로서 활동하면서 치료의 능력으로 임금의 신뢰와 중신들의 질시를 계속받으면서 출세가도를 달렸다. 그가 여러 고을의 현감으로 발령받으면서 필요시에 어의로 궁중에 부름을 받았던 것은 그의 능력과 관계가 깊은 것이다.
<- 남영에 대해 적고 있는 ‘함창군읍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