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일 교수의 儒醫列傳 148

기사입력 2010.07.02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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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楮貨 100장을 상으로 받은 조선 초기 御醫

    세종년간에 여러 차례 임금으로부터 의복, 말 등을 하사받는 어의가 있었다. 태종 때는 내의원에 있을 때 병을 잘못 치료했다는 죄목을 받아 平原海라는 일본 출신 의관과 함께 전의감으로 강등되었던 曺聽이라는 사람이 그이다. 曺聽은 御醫로서 權近, 楊弘達, 盧重禮 등 인물들과 동시대에 활동하였다. 당대의 의학의 중추적 인물이었던 이들 세 인물들과 동시대에 활동하면서 曺聽은 경력을 쌓아가면서 의학적 신뢰를 구축해 갔다.

    曺聽은 태종년간에 약을 바치면서 封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判典醫監事가 파직을 요청하는 위기도 있었고, 임금의 약을 제대로 조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다른 부서로 쫓겨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수년 후에 다시 치료의 공로로 상을 받기도 하였다. 『태종실록』 태종 12년(1412년) 6월23일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中宮이 매양 難産하는 병이 있어서 내가 걱정하였더니, 이제 경 등이 성의 있게 약을 공급함에 힘입어서 근심이 없으니, 내가 심히 기뻐한다. 檢校漢城尹 楊弘達, 檢校參議 楊弘迪, 전 判典醫監事 曹聽 등이 지은 약이 효험이 있었으니, 각각 쌀 10석을 내려 주고, 典醫注簿 金土, 副司直 李軒에게 쌀 각각 5석을 내려 주라.”

    다음해에는 약시중을 잘하였다고 하여 楮貨를 100장을 상으로 받는다. 세종 7년에 이르러서는 치료의 공로로 말 한필을 하사받는다.

    <- 조청에 대한 기록이 나오는 태종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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