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3년 晴崗 金永勳 先生의 文化褒賞
“晴崗先生文化褒賞 賀帖”을 보고
1963년에 광복절을 기념하여 정부에서는 대한민국건국축하식전에서 교육, 학술, 예술 등 17개 부문에 걸쳐 267명의 유공인사들에게 건국국민훈장을 수여한다.
이 때 보건 부문에 수상자로 선정된 11명 가운데 晴崗 金永勳(1882~1974) 先生이 포함되어 있다.
호가 晴崗으로 1882년 江華島 江華邑 官廳里에서 출생한 金永勳은 名醫 徐道淳의 제자가 되어 醫學入門 硏究 계통의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
1904년 최초의 근대적 한의과대학인 同濟醫學校가 설립되어 교수를 뽑자 이에 지원하여 수석합격하여 都敎授가 되었고, 典醫 出身이며 한의계의 원로였던 洪哲普, 張容駿, 崔奎憲 등과 함께 八家一志會를 만들어 한의학의 부흥운동에 힘을 기울였다.
1915년에는 全國醫生大會를 개최하여 전국규모의 한의사단체를 결성하였으며 한의학 전문잡지인 東醫報鑑을 창간하였다.
1924년에는 학술단체인 東西醫學硏究會를 조직하여 학술 진흥에 힘을 기울였고 1937년에는 京畿道立醫生講習所를 열어 한의학의 후진을 양성하는 등 일제시대 한의학 부흥에 앞장섰다.
1935년부터는 학술잡지 東洋醫藥을 간행하여 활발한 활동을 시작하였다.
해방 후에는 舊王宮 名譽典醫, 대한한의사협회 명예회장, 서울한의과대학(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전신)의 명예학장으로 추대되었다.
이와 같은 공적으로 1963년 건국국민훈장을 포상받은 것이다. 포르투갈 대사, 브라질 대사, L.A 총영사 등을 역임한 큰 아들 金琦洙는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에 김영훈 선생 관련 자료 일체를 1999년 기증하였다. 그 자료 가운데 “晴崗先生文化褒賞 賀帖”이라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이 자료는 아마도 1963년 건국국민훈장을 받은 것을 축하하기 위하여 모월모일 축하연을 거행하였을 때 한의계의 유명인사들이 방문하여 축문을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정확한 날짜가 적혀있지 않아서 어떤 날이었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한자리에 모여서 순서대로 기록한 것이 확실하다.
이 賀帖에 글을 실은 인물들은 순서대로 鄭炅謨, 朴性洙, 金長憲, 申佶求, 洪性初, 朴容模, 裵基祿, 李鍾奎, 權英植, 朴承煥, 閔允植, 金定濟, 蔡仁植, 王熙弼, 河齋峯, 朴一洪, 尹吉榮, 李碩泰, 朴勝九, 炫九, 李淵淳, 李永培, 崔奎晩, 金永錫, 李鍾海, 李基淳, 金昇起, 金文洙 등이다.
모두 다 명필로 漢詩로 祝文을 쓰고 있는데, 글 속에 이들의 진심어린 마음이 절절히 배어져 있다. 이들 가운데 일부 인사는 축문을 별도로 써서 金永勳 先生께 전달하기도 하였다. 洪性初, 權英植, 金長憲, 王熙弼, 李鍾海, 蔡仁植 등이 그러하다.
1963년 9월20일에 발행된 『대한한의학회보』 제1권 제5호에는 金容福이 쓴 “漢醫學界의 太陽이신 晴崗 金永勳 先生님의 褒賞에 際하여”라는 제목의 글이 실려 있다.
“晴崗 金永勳 先生은 九十平生을 一日같이 民族文化의 發展向上과 本邦醫學界를 爲하여 貢獻하신 분으로서 今般褒賞 勳格別로 본다면 最高文化勳章인 大韓民國章을 받으심에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然이나 謙虛하신 先生의 性格이나 九十이 將近하신 오늘날도 하루 二十四時間 중 손에 醫書를 들지 않는 時間이 別로 없는 先生의 氣品이 何等 勳格에 拘碍될 理 없고 또 그와 같은 高邁하신 德行이 一般에게 尊敬을 받으시는 所以가 되는 것이라고 본다.
文字 그대로 老當益壯하신 先生은 九十上壽로 오늘날도 우리 醫界의 發展을 爲하여 貢獻하고 계신 것이다. …
오늘날 晴崗 先生님이 한의학계의 功勞者로서 政府의 褒賞을 받으시는 것은 當然한 事이어니와 우리 會員 同志는 이 기회에 先生의 業績을 더듬어보며 아울러 先生님의 닦아 놓으신 터전 위에서 우리 한의계에 보다 나은 發展向上이 있기를 念願하는 뜻에서 이 글을 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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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강선생문화포상 하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