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0년대 賣藥戰
“약물 판매전쟁의 시대”
“근일 우리의 눈을 현혹케하는 것은 平和堂의 「百補丸」 神聖堂의 「겡오-」이다. 전자는 보혈강장이 宣傳의 요점으로 혹은 宮家, 一流(?)富豪, 紳士 등등의 讚辭을 나열하야 지방농촌민을 상대로 하고 있고 후자는 淋疾梅毒根絶를 요점으로 역시 여러 가지 편지 같은 것을 인용하기도 하고 또 「구로벨」 박사를 내세우는 등 지방의 농민을 판매망속에 너코 있는 것이오. 그 다음 이와는 좀 類가 다르나 天一藥房은 趙膏藥, 朝鮮賣藥은 靈神丸으로 好對照가 되고 柳韓洋行의 「톤토닉」 慈善堂의 「蔘茸토닉」 朝鮮商會의 「蔘茸精」 金剛製藥의 「페찌날」 釜山의 魚乙彬은 「萬病水」라는 그 모든 것을 가지고 혹은 수십년 혹은 수년래에 막대한 大財를 穫得하였다. 이제 여기서 우리는 이 모든 매약상들이 과연 얼마나한 「돈」을 모았으며 또 대체 이 모든 약이 매일 얼마식이나 팔(賣)려나가나 이것을 內査하야 보기로 하였다.”
위의 글은 1936년 12월1일 일제시대 잡지 『삼천리』 제8권 제12호의 “最近 賣藥戰, 누구누구가 돈 모앗나?”라는 제목의 글이다. 이 글에서는 당시 많이 판매되었던 약물들을 소개하고 있다. 당시 국가적 열기로 가득찼던 두가지를 언급한다면 하나는 ‘金鑛熱’, 하나는 ‘賣藥戰’이었다. ‘金鑛熱’은 金鑛을 찾는 ‘골드러시’의 행진을 말하며, ‘賣藥戰’은 전쟁을 방불케하는 약물 판매를 위한 경쟁을 말한다. 당시 신문에 나오는 광고의 80~90%는 약물 광고였는데, 이것은 약물 판매로 생긴 수입을 광고에 투자해도 충분한 수익이 순환될 수 있을 만큼 판매시장의 규모가 컸기 때문이다.
이 전쟁의 중심에 서 있는 몇 개의 약물을 소개한다.
朝鮮賣藥의 靈神丸은 소화제를 잘만드는 회사의 秘方으로 소개되고 있다. 한달에 12만여포가 팔려나갈 만큼 인기를 끌었다. 이 약은 중국, 일본, 여타 국가에 수십만포가 팔려나갈만큼 유명하였다.
天一藥房의 趙膏藥은 趙寅燮이 선대부터 전래되는 비방으로 종기약으로는 神效가 있는 것이다. 이것 역시 매일 4, 5백포의 판매고가 있어 매월 수만포가 식민지 조선 각지에서 판매되어 朝鮮賣藥의 靈神丸과 쌍벽으로 간주되고 있었다.
平和堂에서는 百補丸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李根澤이 인쇄업으로 번 돈으로 淋疾藥을 만들어 판매하다가 百補丸을 보약으로서 만들어 판매하여 성공을 거둔 것이다. 神聖堂의 金海鎭은 「구로벨」, 「겡오-」라는 임질약을 만들어 성공을 거두었다. 百補丸과 「구로벨」은 선전을 잘 이용하여 대량판매에 성공한 예로 언급된다.
미국사람 魚乙彬 박사에 의해 만들어 판매된 萬病水는 釜山을 근거로 全朝鮮에 판매망을 가지고 있었던 히트 상품이었다. 그는 이 약의 판매로 생겨난 어마어마한 이익의 일부를 釜山의 나병환자를 위하여 기부하기도 하였다.
金剛製藥의 「페치날」은 東亞日報社 광고부에 재직하였던 全用淳씨가 同社를 退한 후 이 약을 연구하여서 의사가 됨과 동시에 판매를 개시하여 성공을 보게된 것이다. 이 약은 마약중독자의 진정제로 특효가 있었기에 외국과 朝鮮全土의 官公立大醫院을 필두로 官私立病院에서도 모두 사용하였다고 한다.
慈善堂의 蔘葺 톤토닉과 朝鮮商會의 蔘茸精은 모다 강장제로 蔘茸을 정제한 것이다. 柳韓洋行의 토토닉은 폐결핵, 신경쇠약, 肋膜炎 등에 특효약으로 판매되었다. 이 질병들은 당시 朝鮮사람들이 가장 많이 앓고 있었던 질병이었다.
위에 보듯이 1930년대 조선의 양대 관심사는 金鑛과 賣藥이었다. 약물을 판매하여 생기는 이익이 어마어마하였기에 이 대열에 동참하는 인사들이 많아지게 되었고 기업화되어 언론매체의 광고에까지 뛰어드는 제약회사까지 등장하게 되었다. 이들 약물들은 대체로 한약이 주종을 이루고 있는데, 이것은 당시 조선의 높은 한의약에 대한 선호도가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다.
<- 일제시대 조선의 매약전을 다루고 있는 삼천리 잡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