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鄕藥, 獸醫學으로 민족의학을 세우고자 꿈꾼 조선 초기의 儒醫
1399년 『鄕藥濟生集成方』이 『新編集成馬醫方·牛醫方』과 함께 간행될 때 나온 권근의 발문에는 房士良이라는 인물이 기록되어 있다. 당시 房士良은 濟生院에 근무하고 있으면서 이 두 의서의 편찬작업에 참여하였다. 그의 생몰연대는 알 길이 없지만, 고려시대 우왕 3년(1377년)에 과거에 급제한 후로 1391년 공양왕 때 兼典醫寺丞으로 시무 11조를 올린 것과 1401년 知濟生院事로 복무한 것이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新編集成馬醫方·牛醫方』에는 房士良이 쓴 서문이 보인다. 이것은 이 책의 편찬에 房士良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그가 조선 초기의 국가적 사업에 해당하는 『鄕藥濟生集成方』과 『新編集成馬醫方·牛醫方』 두 서적의 편찬에 깊이 관여한 것은 당시 그의 의학에 대한 입지가 어떠하였음을 말해준다. 더욱이 향약의 자립과 경제적·군사적 필요에 의한 獸醫學의 연구 등이 국가적 당면목표였던 점에 비추어 본다면 더욱 그러하다.
房士良이 중국산 약재인 唐藥보다 鄕藥을 사용할 것을 강조한 것은 그의 오랜 숙원이었다. 그가 고려말 공양왕 3년(1391년)에 올린 시무11조의 11조목 가운데 세가지가 이와 관련이 있다. 세 번째의 외국물건의 사용을 금지할 것, 다섯째의 국내에서 사용되지 않은 동철기 대신 자기나 목기를 이용할 것, 여덟 번째의 牛馬의 밀무역을 금지할 것 등이 그것이다(한국한의학연구원, 『역대의학인물열전 3』, 2009).
房士良은 향약과 수의학의 연구의 성격이 단순한 국산품 애용운동을 뛰어넘어 민족적 향약운동으로까지 연결된다고 보는 것은 이 때문이다.
<- 방사량의 신편집성마의방의 내용을 간추린 편찬자 미상의 상마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