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9년 4월7일 東洋醫藥協會의 創立
“일만여 한의약 관계자 대동단결의 길로”
1939년 4월7일자 동아일보에는 ‘일만여 한의약 관계자 대동단결의 길로’라는 제하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게재되었다.
“오천년동안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전민중의 의료기관이었으면서 시대의 풍조에 따라 반세기동안 국가기관이고 사회시설이고 할 것 없이 한자리도 차지하지 못하고 모조리 서양의학에 그 지위를 빼앗기고 오직 역사적 잔재로서 시대에 뒤떨어진채 개인의 영리를 위하여서만 존재할 따름이면서 오히려 도시와 촌락할 것 없이 절대다수의 민중과 절대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는 동양의학(東洋醫學)이 근년에 이르러서 과학적 토대(科學的 土臺) 위에 재건의 기운이 농후하여 오던차 급기야 사변의 영향을 받아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급격한 변환을 일으키게 되므로 따라 부흥기운은 동양의학 관계자들의 사회적 대동단결(大同團結)의 부르짖음으로써 제1보를 내어드디게 되었다.
전 조선의 의료상황을 보면 의사총수 7561명 중 약 과반수인 3739명이 한방의(漢方醫)이고 9378명의 약종상(藥種商) 및 약제사(藥劑師) 중 7989명이 한약종상이라 하니 그 개개체가 아무리 미미한 존재이라고는 할지언정 얼마나 민중과 결탁되어 있는가를 말하고 남음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학문적으로는 기백년 기천년전의 고인의 유저(遺著)에 의하여서만 잔재하여 있고 또 상호간 연구연락도 되어 있지 못한터로 겨우 수년전 총독부의 새로운 인식으로 한약조사위원회 설치를 보게 되고 소화2년이래 5개년 계속사업으로 한약구방제정 약초연구소 설치, 경성제대 내의 연구부문 증설 등 몇가지의 새로운 경향을 보고 있던바 금번에 현호섭(玄鎬燮)씨 등 사계 유지자의 발기로 널리 전조선 일만이천의 한약관계자에게 동양의약협회(東洋醫藥協會)를 결성하자는 통첩을 발송하였다고 한다.…”
위의 기사는 東洋醫藥協會의 결성식에 대한 기사로서 1939년 4월 16일과 17일 양일간 태평동 府民館에서 거행될 동 협회의 창립총회 및 강연회를 다룬 것이다. 이 협회는 한의계와 한약업계 양측이 함께 참여하는 형태를 띠고 있는데, 이것은 한의계와 한약업계가 대동단결하여 민족의학을 부흥시키자는 취지가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날 창립총회에서는 理事長에 金明汝(韓醫側), 副理事長에 趙寅燮(漢藥側)·李丁玉을 選出하고, 醫藥界를 網羅한 42名의 理事를 委囑하여 總務, 財務, 硏究事業의 각 部署를 定하였다. 그리고 議決事項으로서는 ①漢方醫藥專門學校의 設立 ②附屬漢方病院의 設立 ③學術誌 및 漢方文獻의 刊行 ④漢藥材의 生産勸奬과 調達 등을 實踐할 것을 決議하였다(이종형의 연구 인용).
그리고 講演會로 이어졌는데 그 題目과 講演者는 위의 표와 같다.
위의 의결사항 가운데 ‘① 漢方醫藥專門學校의 設立’은 조선일보 사장 方應謨가 설립의향을 타진해옴에 따라 가시화되는듯 하였지만 朝鮮總督府 學務局의 반대로 인하여 좌절되게 되었고, 東洋醫藥協會 자체도 9개월 후에 이사장 金明汝의 身病 등이 겹치게 되어 와해되었다. 게다가 기관지인 『東洋醫學』도 6호까지 간행되고 중단되고 말았다. 모처럼의 부흥 기운이 사그라들게 된 것이다.
<- 1939년 4월7일자 동아일보에 나오는 동양의약협회 창립에 대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