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대 醫官 出身으로 崇錄大夫까지 오른 儒醫
1736년(조선 영조 2년)에 23세의 나이로 金履亨이라는 인물이 醫科에 급제한다. 급제와 동시에 영조는 趙命臣에게 다음과 같이 하교한다. 그 내용은 ‘承政院日記’에 나온다.
“지금 醫科榜目을 보니 金履亨은 아버지가 若礪라고 한다. 金若礪는 金有鉉의 아들이며, 金有鉉은 三朝舊醫이다. 특별히 공적이 있을 뿐 아니라 그 성품도 樸直하다. 이를 내가 일찍이 좋아하였다. 지금 그 손자가 의과에 參榜(科擧의 榜目에 자신의 이름을 올림)하였으니, 가히 가문을 이었다고 할 것이다. 내의원에 명령하여 궐원이 생기는 대로 수용하라.”
이 장면은 金履亨이라는 인물이 醫科에 급제한 사실을 영조가 알게 되어 그의 할아버지 金有鉉, 아버지 金若礪 등이 궁궐에서 어의로 근무했던 사실을 들면서 의업으로 이어진 金履亨의 집안을 신임하여 궐원이 생기면 빨리 그로 대치하라고 명령하는 것이다. 이것은 영조가 “醫不三世, 不服其藥”이라는 논을 이미 알고 경험있는 가문의 의관을 예우하고 있는 장면이다.
金履亨은 醫業을 하고 있지만, 그의 증조부 金柱廈는 僉節制使, 외조부 方震說은 무과 출신으로 縣監을 지냈고 처외조부 金得江은 禮賓寺別提를 역임한 집안이다. 게다가 金履亨은 평생동안 관직생활을 하면서 품계가 崇祿大夫까지 오르게 되었고, 惠民署, 內醫院 등에 관직을 두면서 首醫에까지 올랐고 坡州牧使, 知樞가 되었다. 醫官으로서 높은 관직을 섭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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