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醫門의 길, 10일 갈길을 1일 갈 마음으로 불철주야하고 걸어가자”
화요한의학연구회의 『화요한방』 창간호
“醫門의 길은 멀고 멀고 깊고 깊어 一生을 걸어가야 한다. 그야말로 醫門은 學海다. 學海는 浩浩茫茫하여 끝이 없다. 이 길을 걸어가려면 晝夜를 쉬지 말고 걸어야 한다. 이 길을 걸어갈 때 白晝는 日光을 얻어 걷는다. 하지만 漆夜를 當하면 燈火가 없이는 도저히 걸어갈 수 없다. 이 燈火는 곧 先覺者이며 指導者이다. 燈火가 된 指導者는 찾기도 어렵고 얻기도 어렵다. 다행이도 今此火曜漢醫學硏究會는 火曜의 火字를 燈火字로 걸어놓고 講議門을 열었다. 錦上添花格으로 또한 本會誌에 當世名醫 諸位의 經驗秘方과 經歷神話가 繼續回示되리니 모든 會員은 열심히 모여 이 燈火를 만들고 醫門의 길을 걸어야 한다. 만약 이 길을 걷기 실어한다면 앞길은 燈火가 없이 걸어가는 夜路를 免하지 못하여 漠然하게 될 것이다.… 入門에 曰 醫出於儒라 하였으니 現今世態는 漢學이 沈滯되어 儒道가 衰退하니 醫學도 따라서 衰退되는 것은 不問可知라 할 수 있다. 이런 때는 더구나 十日 갈길을 一日에 갈 마음으로 不撤晝夜하고 걸어가야 한다.”
화요한의학연구회 소속 회원 全炳舜이 1972년 『火曜漢方』이라는 학술잡지를 창간하면서 쓴 ‘醫門의 길’이라는 제목의 글의 일부이다.
화요한의학회(화요한의학연구회라고도 부름)는 1969년 한의사 10여명이 학술 및 친목 도모를 위해 ‘재경충남한의사회’라는 이름으로 출발해 이듬해 화요한의학회로 변경한 것이다. 이 명칭은 이들이 매주 화요일 진료가 끝난 저녁에 모여 공부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배원식 대한한의사협회 명예회장·박인상 전 대전대 교수·전병순·이병행·홍순용·한희석·권영식 선생 등 한의계의 권위자·원로라 일컬어지는 인사들이 이 곳에서 교류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민족의학신문, 근현대한의학을 빛낸 인물 11 허연, 2003. 4, 18일자).
1972년 7월에 본 창간호를 간행하면서 당시 회장이었던 許燕은 감회를 창간사에 적어 놓고 있다. 부회장 崔錫瑾·朴明在의 卷頭辭, 全炳舜의 卷頭辭, 李炳幸의 祝辭가 그 뒤를 잇는다.
그 이후로 全炳舜의 ‘醫門의 길’을 비롯해서 洪淳用의 ‘臨床的 價値로 본 四象醫學’, 朴寅商의 ‘四象鑑別에 對한 小考’, 韓熙錫의 ‘四象醫學은 李濟馬先生任이 開拓하시였다’, 盧乙善의 ‘四象醫學의 特徵과 使命’, 權英植의 ‘尺度로써의 四象鑑別’, 元明涉의 ‘法醫學 서론 및 意義’, 許仁茂의 ‘迎隨補瀉法의 手技法과 應用例’ 등이 기고되어 있다. 마지막 부분에는 姜錫春, 金雨植, 金長凡, 崔鴻銓, 金顯九, 金慶植, 金四甲 등의 경험방들이 소개되어 있다.
이들이 발표하고 있는 논문의 주제가 대체로 四象醫學에 천착된 것을 볼 때 당시 화요한의학회의 주된 테마가 사상체질의학이었음을 알 수 있다. 사상의학 연구자인 李乙浩 博士를 초청해서 특강을 거행한 것이 그 예의 하나이다. 당시 화요한의학연구회의 회관은 회장 許燕의 제원한의원에 두었고 학술 토론도 그곳에서 이루어졌다.
본 창간호에 실린 글들은 특별히 사상체질의 감별법에 대한 것들이 많은데, 이것은 당시 본 학회가 이 주제에 대해 가장 많이 토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개인적 연구와 집단적 토론을 통해 도달된 학술적 결론이 본 창간호에 실린 것이 아닌가 한다. 이것은 본 학회가 창립된 후 3년여의 세월동안 이루어진 성과인 것이다. 그리고, 개인의 경험방을 醫案의 형식으로 기고하고 있는데, 이것은 학문의 상호교류의 방법의 하나로서 본 학회에서 채택된 연구방법론일 것이다.
당시 부회장인 崔錫瑾은 卷頭辭에서 다음과 같이 화요한의학회의 의지를 천명하고 있다.
“現在 吾道가 處해 있는 位置가 指向하는 바가 韓國醫政史에 將來 어떻게 批判될지는 後世의 醫史學家에 맡기드라도 그 때에 汚點으로 여겨지지 않게 하기 위하여 吾人들은 姿勢를 바로 하고 學術鍊磨에 最大의 努力을 傾注하는 것은 한의사의 良心일 것이다.”
1972년 간행된 화요한방 창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