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일 교수의 儒醫列傳 144

기사입력 2010.03.30 07:45

SNS 공유하기

fa tw
  • ba
  • ka ks url
    B0042010033027941-2.jpg

    B0042010033027941-1.jpg

    조선 외과술의 수준을 한단계 높인 儒醫

    한국의 外科學의 수준을 한단계 높여 놓은 醫人이 있다. 명종 때 활동한 治腫醫 任彦國이 그이다.

    任彦國은 전라도 정읍사람으로 治腫術에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조정에서 그를 불러들여 백성들을 치료하게 하였다. 그의 치료를 받은 환자가 수만명에 달하였다고 하니 당시 그에 대한 사회적 명성은 대단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이 때의 공으로 禮賓寺 主簿에 임명되기도 하였다.

    그는 명종 14년(1559)에 『治腫秘方』이라는 서적을 간행하는데, 이 책에서는 火丁, 石丁, 水丁, 麻丁, 縷丁 등 五丁 및 背腫 등 종기들을 증상, 치법, 약물 등과 함께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鹽湯 引法, 鹽湯沐浴法 등 종기 치료에 사용하는 특수 요법도 기록해 놓고 있다. 여기에서 사용된 치료방법들은 침구에 의한 종양의 절개술에 그친 이전의 방법을 뛰어넘어 현대의 외과술에 필적할 과감한 수술요법으로 볼 수 있다.

    임언국의 저술로 예상되는 『治腫指南』도 당시 외과술의 수준을 가늠하게 하는 서적이다. 이 책은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약탈되어 현재 일본 京都大學圖書館에 보관되어 있는 富士川本인 丹波元簡의 필사본이 전해지고 있다. 『치종지남』에는 임언국의 독창적인 膿瘍鍼破法과 決裂法 및 切開手術法 등이 그림과 함께 기록되어 있다.

    이를 통해 임언국이 외과술의 독자적 영역을 개척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치료술은 임진왜란이 일어나 외과술의 수요가 폭증하였을 때 요긴하게 사용되었고 후대 白光炫과 같은 治腫醫들에게 계승되어 발전하게 되었다. 다만 서양의학이 들어오면서부터 韓醫 治腫術은 쇠퇴의 일로를 걷게 되어 그 명맥마저 끊어지게 되고 말았다.

    임언국의 치종비방.
    backward top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