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의보감’을 모두 암송한 의병장
한말의 학자 黃玹(1855~ 1910)이 1864년(고종 1)부터 1910년(융희 4)까지의 역사를 편년체로 서술한 한말의 역사책인 ‘梅泉野錄’에 郭鍾錫이라는 인물에 대한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郭鍾錫의 기억력은 남보다 뛰어났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동의보감을 한 번만 보고 모두 암송하였다 하였으니, 그의 총명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모든 예술을 통달하고 병법도 연구하였다.”
곽종석은 민비학살사건과 단발령 때 각지의 유생들이 의병을 일으켰을 때, 각국 공관에 열국의 각축과 일본의 침략을 규탄하는 글을 보냈다. 1919년 3.1운동 이후에는 영남과 호남의 유생들의 연서를 받아 파리강화회의에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는 장문의 호소문을 金昌淑을 통해 파리에 전달한 파리장서사건을 일으켰다. 어려서부터 유교경전을 공부하였고, 도가와 불가의 서적에도 밝았다고 한다. 25세에 李震相의 문인이 된 후로 학문에 전념하였고, 을미사변 이후로는 각국에 일본침략을 규탄하는 글을 보내기도 하였다.
이런 인물이 ‘동의보감’을 한번 읽어 보고 모두 암송하였다는 것은 그가 평소부터 의학에 대한 높은 식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증거한다. 儒者로서 의학 연구를 겸한 이 시기의 사회적 풍조와 그의 도가와 불가에 대한 깊은 지식도 의학 연구를 하게된 원동력으로 작용되었다.
그는 의학에 조예가 있었던 李震相의 제자로서 이 학맥은 李退溪의 학통과 이어진다. 李退溪가 의학 연구에 일가견이 있었던 점을 비추어 보면, 의학 연구는 이 학맥의 전통으로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곽종석의 간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