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萬病通治의 의료문화사
역사의 질곡 속의 “萬病通治” 論
“진고개 마루퇴기 지나 우물 앞에 있는 쾌치당 약국에 약품이 지정하고 만병통치하는 약을 염가로 방매하오며 겸하여 침 잘놓는 방술이 있사오니 첨군자는 왕림 문병하시기를 바라오며 병인이 오기 어려우면 원근 물론하고 가서 진후할 터이오니 조량하시오 본국에 있는 쾌락환은 신기 부족과 잉태못하는 데와 늙은이 쇠중과 약질과 골병과 자궁 부실한 병과 방사에 신효하고 승혈환은 담종 혈증 임질 골통 연주창 치질 탈황 산증 만신창 연주창 치질 탈황 산증 만신창에 신효하고 그밖에 신효한 약이 많소 한성 진고개 대일본 침구의사 송본의조(松本儀助) 고백”
1900년 9월18일자 ‘제국신문’에 위와 같은 광고가 실려 있다. 더 상세하게 찾아보면 결론이 나겠지만, 아마도 ‘萬病通治’라는 단어가 언급된 최초의 기록이다. 몇가지 점이 눈에 띤다. 이 선전을 게재한 인물로 “한성 진고개 대일본 침구의사 송본의조(松本儀助)”라고 일본인 침구사가 언급되고 있고, 만병통치약을 판매하는 곳으로 “쾌치당 약국”이라고 하는 약국을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이 약국이 위치하고 있는 진고개는 현재의 충무로 2가로 갑신정변이 일어난 1884년 이후 일본공관이 이곳으로 옮겨진 후로 일본인들이 모여사는 동네가 되었다.
이 기사는 우리들로 하여금 “萬病通治”라는 단어의 씨앗이 일본인들에 의해 이 땅에 뿌려진 순간을 목도하게 한다. 이 기사가 실린 ‘제국신문’은 1898년 창간된 한글판 신문으로서 민족적 색채가 강해서 1910년에 폐간된 신문이다. 위의 기사는 단순한 약국 소개이므로 이 신문에서 게재해준 것으로 보인다.
위의 광고에서 언급하고 있는 “만병통치”라는 단어는 현대에도 그리 낯선 말이 아니다. 길거리에서 약장사들이 자기의 약을 팔려고 행인들에게 큰 소리로 떠들 때 한번씩은 뱉어내는 친숙한 단어이다. 이 단어가 사용되게 된 시점을 조사하면서 구한말 일본인 거주지의 일본인에 의해 처음 사용되어졌다는 사실을 발견한 필자는 아연질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병통치”라는 말은 이후 일제시대를 통털어 광범위하게 약 선전에 활용되었다. 1926년 ‘동아일보’에는 이천의 명물 갈산온천을 “세종대왕이 발견하신 만병통치수”라고 묘사하고 있고, 1937년 9월17일 ‘매일신보’에는 당시 불교계 인사인 金泰洽이 쓴 “만병통치약”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만병통치약이라는 말로 과대광고하는 당시 시류를 비판하고 있다.
만병통치는 식민지 조선사회에 약물 관련 문화적 습속을 대변하는 단어로 깊숙이 자리잡혀가기 시작하였고, 책이름으로 ‘秘傳萬病通治法’이라고 “만병통치”라는 단어를 사용한 책이 1933년에 간행되기도 하였다.
1957년 한의사 朴性洙(1897~1989)는 1957년 한의학 학술잡지 ‘東方醫藥’3권 3호에서 “漢醫學의 淨化는 不正醫療業者拔本에 있다”라는 글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漢醫學에 崇高性를 回復하려면은 醫方活套만으로 萬病通治하려는 無免許醫療行爲者의 拔本刷新으로부터 漢醫界의 淨化가 있을 것이니 壹部 同道諸賢으로부터 絶對的인 協助와 醫道良心의 反省과 實踐에서마니 國民의 要求하는 民主保健이 있을 것이며 또는 漢醫學이 지녀오든 悠久한 歷史과 社會的으로 名實相符한 位置가 占有될것이고 仁術의 本義가 完全發揮될 것으로 믿는 바이다.”
朴性洙의 주장에서도 무면허의료행위를 “만병통치”라는 단어와 연계시켜 비판하고 있다. 그가 보기에 무면허의료행위는 어떤 진단도 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처방을 하는 “만병통치”행위에 불과한 것이다.
1962년 ‘동아일보’에도 식료품 향료를 만병통치약이라고 속여서 판매한 업자들에 대한 기사가 기제되어 있다. 여기에서도 만병통치라는 개념을 등장시키고 있다.
지금도 만병통치라는 단어는 평상적인 말로 우리들이 사용하고 있지만, 그 태생적 문제를 고찰해본다면 함부로 쓸 말도 아닌듯하다.
◇일제시대에 간행된 만병통치라는 단어가 들어간 서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