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자로서 醫學敎授官을 역임한 儒醫
고려말 명문가의 집안에서 태어나 조선이 개국한 이후에도 학자로서, 관리로서, 당대의 인물로 회자되었던 卞季良은 의학사에서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공민왕 18년에 檢校判中樞院事인 卞玉蘭를 아버지로, 濟危寶副使 曺碩의 딸을 어머니로 하여 태어난 변계량은 학문을 하는 집안에서 성장하여 그의 총명한 자질이 학문계에서 충분히 발휘되었다.
당시의 유명학자였던 李穡과 權近을 스승으로 하여 그들의 학문을 계승하였다. 특히, 그의 스승은 權近은 조선 초기에 『鄕藥濟生集成方』의 序文과 跋文을 지은 인물로서 의학에 조예가 있었다. 특히 權近은 향약의술을 중심으로 하는 한국의학의 독자성을 부각시켜 의학계에 새바람을 일으켰던 인물이다.
변계량이 1392년 조선왕조가 건국한 이후에 典醫監丞이 된 후로 醫學敎授官을 거쳐 1396년에는 校書監丞에 知製敎를 겸한 것은 이러한 스승의 의학에 대한 깊은 이해도와도 깊은 영향이 있다고 볼 것이다. 그가 태종년간에 학문적 능력이 있는 자들에게 부여되는 요직들을 두루 거친 것은 이 시기 의학에 대한 높은 사회적 인식을 보여주는 증거들이다. 태종 초에 성균관악정, 사제감소감 겸 예문관응교와 직제학을 역임한 후로 1407년(태종 7) 문과중시에 을과에 1등으로 뽑힌 후 당상관에 올라 禮曹右參議가 되었고, 다음해에는 世子左輔德이 되었다. 이후로 예문관제학, 춘추관동지사 겸 내섬시판사, 경연동지사 등을 거쳐 1415년 세자우부빈객이 되었다.
변계량의 이력을 통해 우리는 의학에 대한 당시의 높은 인식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경남 밀양에 있는 변계량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는 비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