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일 교수의 儒醫列傳 141

기사입력 2010.02.23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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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外科學을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킨 儒醫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문인이며 화가인 姜彛五는 문화계에서 비중있는 인물이다. 그럼에도 그가 『若山好古腫方撮要』라는 醫書의 저자라는 사실은 그다지 알려진 바가 아니다.

    호가 若山, 留當, 자가 聖淳인 姜彛五는 본관이 진주로서 영조·정조 년간에 藝壇의 총수였던 姜世晃의 손자였다. 그의 예술적 재능과 감수성은 그 가문의 분위기를 통해 이미 배양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가문과도 관계 깊다. 남종화풍에 능한 그는 매화와 산수를 잘 그려서 당시 金正喜, 申緯의 칭송을 받았다고 전한다. 현재 「江岸舟遊圖」와 「松下望瀑圖」가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그가 지은 의서인 『若山好古腫方撮要』의 책 제목의 의미는 아마도 “若山이라는 호를 가진 姜彛五 자신이 지은 예부터 내려온 좋은 종기처방의 요체를 모은 것”일 것이다. 책의 원문 위쪽에 제목을 붙이고 그 아래에 그에 해당하는 약물을 나열하고 그 주치와 용법을 설명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頭, 面, 耳, 眼, 口, 脣, 舌, 齒, 咽喉, 眉, 腦, 시, 鬚髮, 髮際, 乳, 臂, 手足, 腰脚, 骨, 腎 등 부위에 따른 분류에서부터 麻木, 陰囊, 痔, 癰疽, 發背, 附骨, 표疽, 腫毒, 惡瘡, 浸淫, 라력, 痰核, 懸癰, 便毒 등의 질병명의 분류에 이르기까지 활용도를 극대화시키기 위한 노력의 흔적이 엿보인다.

    姜彛五같은 문화계 인물이 왜 의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분명한 논의는 없지만, 아마도 사물의 외형을 살펴서 그 내면적 감성을 찾아 회화로 표현해내는 예술인의 입장에서 의학은 가장 학술적으로 가까운 학문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腫氣를 중심으로 한 外科의 영역은 외형을 살펴 표현해내는 것에 달통한 姜彛五에게 매우 매력적인 주제였던 것이다.

    ◇강이오의 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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