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일 교수의 儒醫列傳 140

기사입력 2010.02.09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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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鄕藥濟生集成方』으로 한국한의학의 독자성을 주장하고자 한 조선 초기 儒醫

    고려 말에서부터 조선 초기까지 학문으로 이름 떨친 權近은 의학에도 남다른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고려 말기인 1368년(공민왕 17)에 성균시에 합격한 후로 이듬해 급제하여 춘추관검열, 성균관직강, 예문관응교 등을 역임하였고, 공민왕이 죽은 후로는 鄭夢周, 鄭道傳 등과 함께 排元親明을 주장하여 정치적 색깔을 분명히 하기 시작하였다.

    조선 개국 후로는 藝文館大學士, 중추원사 등을 지냈고, 1396년에는 명나라에 다녀오기도 하였다. 그는 당시 조선을 대표하는 학자로서 국제적으로도 이름이 있었다.

    權近이 『鄕藥濟生集成方』의 序文과 跋文을 집필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鄕藥濟生集成方』 서문은 權近의 문집인 『陽村集』에 실려 있다. 이를 통해 權近의 의학사상을 엿볼 수 있다.

    첫째, 의학사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이다. 권근은 『향약제생집성방』이 조선이 건국한 이후 간행된 것을 동아시아 의학사의 전체적인 맥락에서 이해하고 있다. 『주례』, 편작, 유부, 의화, 의완 등의 역사적 사실과 유명했던 의사들을 열거하면서 『향약제생집성방』이 간행되게 된 것을 역사적 흐름 속에서 필연적 귀결임을 강변하고 있는 것이다. 즉, 의설과 처방들은 많아졌지만 이제 정리가 필요한 시점에 와있다는 것이다.

    둘째, 한국의학의 독자성에 대한 想起이다. 중국의학과 다르게 한국의학은 독자적인 전통 속에서 번쇄한 치료법보다 간결한 치료체계로 정평이 나 있다는 것으로서 이것은 『향약제생집성방』 서문의 “나라 풍속이 가끔 한 가지 약초를 가지고 한 가지 병을 치료하되 그 효험이 매우 신통했었다”라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셋째, 향약의술의 爲民的 측면의 부각이다. 향약의술은 태생적으로 簡易醫學的 측면이 강한데, 그 중심에는 백성들이 있다. 이것은 제왕은 백성들을 건강하고 부유하게 만들어주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는 유교적 국가주의와 일맥상통하는 것으로서 『향약제생집성방』의 완성은 이러한 목표에 한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 되는 것이다.

    ◇권근의 양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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