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88

기사입력 2010.01.22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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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요한의학회의 의료봉사활동
    “한의학의 학문적 역할을 논의하자”

    1974년 12월호 『한방춘추』에는 화요한의학회라는 한의학 학술단체의 의료봉사활동을 기사로 다루고 있다. 당시 회장이었던 許燕(1921~1995)이 중심이 되어 진행된 무료 의료진료를 통해 이들은 학술과 봉사를 병행하는 학회의 모범을 제시하였다.

    화요한의학회는 1969년 한의사 10여명이 학술 및 친목 도모를 위해 ‘재경충남한의사회’라는 이름으로 출발해 이듬해 화요한의학회로 변경한 것이다. 이 명칭은 이들이 매주 화요일 진료가 끝난 저녁에 모여 공부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배원식 대한한의사협회 명예회장·박인상 전 대전대 교수·전병순·이병행·홍순용·한희석·권영식 선생 등 한의계의 권위자·원로라 일컬어지는 인사들이 이곳에서 교류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민족의학신문, 근현대한의학을 빛낸 인물 11 허연, 2003. 4, 18일자).

    『한방춘추』 1974년 12월호에 따르면 同 會에서는 그해 6월부터 3주간, 겨울철에 2주간 모두 5주간만 제외하고 1년 53주 중에서 48주간을 꼬박 모이면서 회원자질 향상과 학술연마를 위한 학술강좌를 실시하였다고 한다. 11월 첫째 화요강좌부터 4주일 동안 內經과 周易의 講座를 실시하여 素問, 靈樞에 나오는 周易의 이치를 해득하고자 하였고, 6월에는 洪淳用의 鍼灸經驗方, 7월말에는 李炳幸의 子午流注法, 9월 첫 강의에는 崔周若의 강좌가 진행되었다.

    8월말에 열린 임시총회에서는 무의촌진료를 결정하여 춘천지구 소양국민학교에서 집단무료진료를 실시하여 21명의 회원이 솔선하여 8월30일에 주민 1000명을 치료해주기도 하였다. 이들 1000명의 환자들 중 부인병환자의 80% 이상이 子宮病을 앓고 있었고 주민들 가운데 피부병환자가 많았는데, 이것은 당시 의암댐이 만들어진 후 폐수오염으로 인한 것으로 판명하였다.

    3개 조로 편성되어 무료진료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이들은 10월말에 강좌를 최종식, 11월에 김현오 등에게 부탁하여 진행하였고, 학회의 문호도 개방하여 회원이 200여명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당시 회장은 許燕, 부회장은 朴明在, 崔錫瑾, 운영위원장은 朴一洪, 운영부위원장은 金長凡, 총무는 金己培 등이 맡았다. 이들은 화요한의학회지를 계속 발간하고 있었다.

    1975년 정기총회를 거쳐 許燕 회장의 후임으로 崔錫瑾이 회장이 되면서 이들의 봉사활동은 더욱 확대되었다. 서울시한의사회 부회장을 역임한 崔錫瑾은 동국대 사학과, 경희대 한의학과, 고려대 대학원 정치외교학과 등을 거친 인물로서 학구열이 대단한 인물이었다. 육군사관학교 8기이기도 한 그는 충남 연기군수도 역임하였다. 그는 당시 원효로에서 천일한의원과 천일화성공업사를 경영하고 있었고, 국가공무원 공개경쟁시험위원직을 맡고 있었다.

    신임 崔錫瑾 회장은 화요한의학회의 미래 비전으로서 7개를 제시하였다. ①건실한 회원을 규합하여 회세 확장 ②보다 나은 새마을 무료진료 강화 ③해외학술단체와의 교류 ④연구회 교재보충면에 치중 ⑤회비 자진납부제로 기금 확보 ⑥전국 지방 순회무료진료 실시 ⑦삼부요인에 대한 고문, 자문위원 추대 등이 그것이다.

    崔錫瑾 회장을 중심으로 화요한의학회는 1975년 10월28일에 고양군 송포지역 주민 300여명에 대해 무료진료를 전개하였다. 회원 20명(남자 한의사 25명, 여자 한의사 4명)이 동원되어 육군 모 부대 주둔 지역 3개 마을 주민에 대한 무료진료에 나섰고, 일선 고지에서 수고하는 국군 장병들에게도 위문품을 나누어주었다.

    화요한의학회의 학술토론과 무료의료봉사 활동은 한의학의 학문적 역할에 대한 재인식의 과정으로 볼 수 있다.

    ◇화요한의학회의 무료의료봉사활동을 조명하고 있는 ‘한방춘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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