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5년 ‘東洋醫學’창간호
“學術 硏究의 廣場으로”
1975년 11월 財團法人 東洋醫學硏究院에서는 『東洋醫學』이라는 한의학 학술잡지의 創刊號를 발간하게 되는데, 發行人 金定濟(1916~1988)는 다음과 같은 창간사를 써서 감회를 표하였다.
“東洋醫學의 理論體系를 整備하며 時代的인 要請에 副應할 수 있게끔 學術의 發展을 圖謀하기 爲하여 斯界 碩學 大家들의 硏究와 協心努力이 그 어느 때보다도 切實하게 要望하는 階梯에 이러한 課題의 解決에 길잡이가 되고 또한 學術 硏究의 廣場이 되고자 本誌를 創刊하여 呱呱의 聲을 發하게 되었습니다.
갓난 아기의 목소리가 아직은 軟弱하지마는, 귀여운 아기의 誕生을 기뻐하고 알뜰하게 보살펴 주는 一家親戚의 따뜻한 溫情으로 學界에서 이를 키우고 아껴주신다면 멀지 않은 앞날에 반드시 所期의 成果를 거두어 東洋醫學의 發展에 寄與할 수 있을 것으로 確信하는 바입니다.
아무쪼록 本誌를 學界諸位의 귀여운 玉童子로 確定하시고, 이 아기가 成長하여 여러분의 高見과 創意的인 學術을 代辯할 수 있도록 아낌없는 協助와 參與가 있으시기를 거듭 仰望하면서 人事의 말씀으로 가름하는 바입니다.”
이 잡지를 발행한 東洋醫學硏究院은 한의학의 학술 진작을 위해 이 잡지가 나오기 2년 전에 창립된 학술단체이다. 동 연구원의 원장은 당시 경희대 한의학과 교수였던 金定濟가 맡고 있었고, 본 잡지의 발행인도 그가 맡아 하게 되었다.
위의 창간사에 나오듯이 발행인 金定濟는 이 잡지의 간행이 “學術의 發展을 圖謀하기 爲하여 斯界 碩學 大家들의 硏究와 協心努力이 그 어느 때보다도 切實하게 要望하는 階梯에 이러한 課題의 解決에 길잡이가 되고 또한 學術 硏究의 廣場이 되고자 本誌를 創刊한 것”이라고 감회를 적고 있다.
“學術 硏究의 廣場이 되고자”하는 이 잡지의 목표를 완수하기 위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본 창간호에는 당시에 한의계에서 명망있는 인물들이 모여 진행한 “東洋醫學의 振興發展을 爲한 學術的 課題”라는 특집좌담이 게재되어 있다. 이 좌담에 참석한 인물은 金永萬, 金完熙, 文濬典, 裵元植, 安秉國, 陸昌洙, 李聖宿, 李鍾馨, 崔衡鍾, 韓堯頊, 洪淳用, 洪元植 등이다. 동 좌담에서는 한의학의 발전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논의하고 있는데, 한의학을 한의학적인 방법론으로 연구해야 한다는 주장에서부터 새로운 지식을 도입하는 기풍을 조성하자는 주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논의의 장이 펼쳐졌다.
金定濟의 개회인사 다음으로 당시 대한한의사협회 회장이었던 韓堯頊은 “한의학은 한의학대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입장에서 의료의 일원화에 반대하면서 서양의학의 일부 연구방법론 가운데 유용한 것은 차용할 것을 절충적으로 주장하였다. 李聖宿은 “의학의 본질부터 구명하자”는 관점에서 한의학이 ① 陰陽 ② 五行說 ③ 養生 ④ 運氣 ⑤ 臟腑, 經絡, 生理, 病理, 鍼灸 등으로 기술되어 있다고 파악하면서 이를 현대화하는 것이 시대적 요청이라고 주장한다.
이어서 李鍾馨은 “동양의학의 정통적 원리를 확고히 할 것”을 제기하면서 古方學說을 經으로 後世學說을 緯로 하여 체계적으로 정리해야 한다고 하였다. 安秉國은 “醫學知識의 平準化를 期할 것”을 주장하면서 古典醫書에 대한 일정한 수준의 평준화된 수준의 지식을 가진 연후에 여러 가지 문제점을 논의할 수 있다고 하였다. 金完熙는 “동양의학 고유의 원리에 기초한 한방생리학의 혁신”을 위하여 循環系統이나 臟器機能을 發生學的인 바탕에서 再檢討하고 再編成해야 할 것이라고 역설하였다.
『東洋醫學』 창간호에는 이외에도 盧正祐, 林鍾國, 安德均 등의 학술논문과 金來元의 時論, 金賢濟의 강좌 등이 게재되어 있다.
◇1975년 11월에 간행된 ‘동양의학’ 창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