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申佶求를 통해 전해 듣는 李乙雨의 치료 일화
수일 전에 신촌한의원 한요욱(韓堯頊) 원장님으로부터 한의학 학술잡지 『靑醫』 5권을 받았다. 백발이 성성하면서 깊이 울리는 음성을 가지고 계신 한요욱 원장님께서 소중하게 간직하고 계시던 이 학술잡지의 全卷을 기증하여 주시니 너무 기쁜 마음에 창간호를 펼쳐보았다.
창간호를 펼쳐보니 1971년 12월13일 國一館食堂에서 申佶求(1894~1972)의 “藥物修治論”이라는 제목의 강연록이 눈에 띄었다. 이 강연은 漢方土曜會 제45회 학술강좌회에 申佶求가 초대되어 이루어졌다. 본 강연은 申佶求 先生이 작고하기 1년 전에 이루어진 마지막 강연이었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본 강연에서는 약재의 修治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그 방법을 火製( , 炙, 炒, ), 水製(漬, 泡), 水火共製(蒸) 등으로 구분한다. 이밖에도 焙(쬐어 말리는 것), 煉(重湯으로 다리는 것), 泡(濕紙에 싸서 熱灰中에 埋하여 눗지 않게 하는 것), 熬(煎하여 水氣가 없도록 볶거나 火로 乾燥시켜 汁을 去하는 것), 飛(水飛의 略稱), 洗(물에 씻는 것), 宿(水中에 浸置하여 一夜 經過시킴), 曝(直射光線에 쬐어 말림), 露(이슬에 露出시킴), 膏(粘液이 되도록 다림), 燒有性(黑燒시키는 것), 製, 鹽製, 蜜製, 密製, 麵製, 土製 등을 거론하였다.
본 강연의 질의응답 시간에 申佶求는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한다.
“3.1 獨立萬歲頃 倭政下에 서울 北部에 官立避病院(順化醫院)이 있었다. 洋醫와 漢醫가 함께 診療에 從事하였는데, 漢方側 醫師는 李乙雨 先生이었다. 이때 洋醫側에서 取扱하던 不治 患者 一人을 漢醫側 李乙雨先生에게로 보냈다. 李 先生 역시 쉽게 治療하기는 어려웠다. 苦悶 끝에 그의 病歷을 仔細히 알아본 結果 처음 發病이 꿩고기를 먹고 滯해서 發病되었음을 알았다. 어떤 藥을 써도 病勢가 好轉되지 않아 궁리 끝에 生薑汁을 만들어 아침 저녁으로 먹였다. 그는 生薑汁을 마심에 따라 하루하루 差度가 있어 며칠만에 完快됨에 이르렀다. 洋醫側에서는 자기들이 못고친 患者를 漢醫側에서 거뜬히 고쳤으므로 洋醫側으로서는 心中에 敬歎치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 이 患者는 어째서 生薑汁을 먹고 治療가 되었을까? 본시 꿩은 半夏를 잘 캐먹는 짐승이다. 아마도 이 患者가 먹은 꿩고기는 半夏를 너무 캐먹어 半夏毒이 많은 꿩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患者는 半夏毒으로 因하여 發病되었으며 그 病이 惡化되었을 것이다. 生薑은 半夏毒을 除去하는 가장 좋은 藥이다. 따라서 이 患者는 生薑汁을 먹음으로 말미암아 半夏毒을 除去할 수가 있는 것이다.”
官立避病院(順化醫院)은 1909년 10월에 설치된 전염병 환자 전용병원이다. 이 병원에는 한방과가 설치되어 운용되고 있었고 여기에 李乙雨가 근무하면서 환자를 진료하였다.
李乙雨(1871~?)는 1922년 한의사단체인 東西醫學硏究會가 조직될 때 부회장에 피선되었다. 東西醫學硏究會에서는 전염병 관리에 한의사가 참여하기 위해 당시 전염병 전문 의원인 順化醫院에 한방과를 설치할 것을 강력하게 추진하여 이를 관철해내었고 李乙雨가 여기에 들어가 한의사로 근무하게 된 것이다.
위의 글에서 “3.1 獨立萬歲頃 倭政下”라고 한 것은 1922년 東西醫學硏究會가 설립된 후 順化醫院에 한방과가 설립된 시기를 지칭한 것이다.
李乙雨가 生薑汁으로 洋醫가 치료하지 못한 질환을 치료한 것을 申佶求가 大韓漢方土曜會의 강연하는 자리에서 언급한 것을 학술잡지 『靑醫』의 지면을 통해 기록해 놓은 것은 韓醫學史에서 잊혀질지도 모를 값진 이야기를 우리에게 남겨준 훌륭한 일을 한 것이다.
이와 같은 일화들이 모여져 역사로 구성되어야 近現代 韓醫學史의 맥락이 제대로 잡히게 될 것이다.
◇1973년 청의 창간호에 게재된 신길구의 강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