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명종대의 이름 있던 儒醫
화려하지는 않지만 궁중에서 나름대로 역할을 한 御醫들은 수없이 많다. 이들은 궁중에서 임상, 연구, 행정 등에서 제역할을 하면서 한국 한의학의 역사를 빛낸 인물들이다. 이들의 활동은 한의학의 학술적 내용을 풍부하게 해주었기에 차근차근 자료를 살펴보면서 연구를 하여 발굴되어야 한다고 본다.
조선 중기 명종년간에 궁중에서 활동한 김윤은은 화려한 기록이 나오지는 않지만 당대에는 이름있는 의원으로서 시대를 풍미했던 名醫이다. 김윤은은 1550년(명종 5)에 당시 최고의 醫官이었던 柳之蕃과 함께 『黃疸학疾治療方』을 만든다.
이 책에 대해 명종은 다음과 같이 극찬하였다. “이 方文을 보니 치료법이 간단 명료하다. 각도 州府郡縣 및 僉使, 萬戶에게 이미 아뢴 바에 따라 印出하여 반포하도록 명하였다. 그러나 궁벽한 시골의 백성들은 두루 구해 보지 못할 것이니 감사 및 州府 등 큰 고을에서 인출하게 하여 경내의 백성들에게 나누어 준다면 그 치료 방법에 이익되는 바가 많을 것이다.”
김윤은은 1565년에 왕을 치료한 공로로 嘉善大夫가 되었다. 이듬해에 『명종실록』에는 “柳之蕃과 金允誾은 의술이 여러 의원 가운데 가장 우수합니다. 상께서 하문하시는 바가 있거나 입진할 때에는 반드시 이 두 사람이 받들어 거행하게 할 것이요, 다른 의원과 같게 여겨 병자(病者)들의 집을 드나들게 해서는 안 됩니다.”라는 기록이 나오는데, 이것은 당시 김윤은이 얼마나 신뢰받는 內醫였는가를 증거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해에 명종이 죽게 된 후에는 內醫로서 책임을 물어 벌을 받게 되었다.
◇김윤은에 대한 기록이 나오는 ‘명종실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