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中人의 집안 출신으로 正一品 崇錄大夫까지 오른 脈診의 大家
1712년(숙종 38년)에 태어나 1735년(영조 11년) 增廣試 醫科에 급제한 후로 醫官으로 근무하다 정조 때 縣令을 거쳐 正一品 崇錄大夫까지 오른 慶絢은 중인 집안 출신에서 신분이 높이 상승한 인물로 기록에 남아 있다.
그의 아버지 慶國昌은 醫科 출신으로 관직이 惠民署主簿였으며, 조부인 慶溥는 관직이 算學別提인 算科 출신의 中人이었고, 算學敎授를 지낸 증조부 慶善行도 算科 출신이었다.
그뿐 아니라 외조부인 韓重琦는 譯科 출신이었으며, 장인이었던 金景璧도 司譯院主簿를 지낸 譯科 출신이었다. 이렇듯 가문이 中人 출신이고 中人들과 통혼한 것을 볼 때 그가 正一品 崇錄大夫까지 오른 것은 매우 파격적인 것이었다.
『日省錄』에는 정조 즉위 년부터 慶絢에 대한 기록이 나오기 시작한다. 수차례 入診하여 三部脈診으로 정조의 증상에 대한 진단을 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기도 하고, 증상에 맞추어 처방을 내는 장면도 나온다. 葛根과 金銀花를 섞은 茶를 권하기도 하고 心腎湯, 六君子湯, 茹藿湯, 倉름散, 加減倉름;散, 加減立效散 등을 처방하기도 하였다.
증상을 진찰하는 일은 慶絢이 도맡아서 하고 있으며 특히 脈診으로 胃氣의 상태를 파악하는 일이 그의 전문이었던 것 같다. 그의 脈診은 항상 처방의 전거가 되었기에 그의 판단은 중요한 진단적 기준이 되었다. 慶絢은 내의원 도제조 徐命善, 제조 具允鈺, 부제조 洪國榮 뿐 아니라 醫官 吳道炯, 康命吉, 張祜, 醫女 雪梅, 貴蟾, 色伊 등과 질병을 토론하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경현의 기록이 나오는 정종년간의 일성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