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萊복)는 뭉친 것 풀고, 아래로 내리는 작용
呼散之氣 이용 경직된 몸을 풀어주고 중화시켜
지난 9월 17일부터 19일까지 3일간 전북대학교 진수당에서 ‘동아시아 전통농업의 재조명’이라는 주제로 제9회 동아시아 농업사 국제학술대회가 열렸다. 이는 농촌진흥청과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공동으로 주최하였으며, 한국농업사학회와 중국농업사학회, 일본농업사학회, 전북대학교 인문한국(HK)쌀·삶·문명연구원 등이 공동으로 주관한 대규모 행사로 5개국에서 40건의 논문 발표가 있었다.
농촌진흥청에서는 전통지식의 국내 활용 촉진과 국제적 보호기반 구축을 위하여 이러한 노력을 하고 있는데, 마침 필자가 ‘무의 품성과 효능에 대한 문헌연구’ 논문을 발표하여 호평을 받게 되었다. 그럼 무에 대하여 어떠한 관점으로 접근해야 하는지 먼저 그 글자의 의미부터 살펴보기로 한다.
무를 한문으로 내복(萊 )이라 하는데, 밀[來]의 독성을 없애고 이길[服] 수 있다는 뜻이다. 현재는 ‘온다’라는 뜻으로 내(來)를 사용하고 있으나, 2000여년 전에는 이 내(來)를 ‘밀’을 의미하는 글자로 쓰였다. 약 3000여년 전에 나온 『詩經』에 ‘우리에게 밀과 보리를 주심은 상제(上帝)께서 명령하여 두루 기르게 하신 것이다(貽我來牟 帝命率育)’라는 문장이 나오고, 주자(朱子)는 이를 보충하여 설명하기를 ‘내(來)’는 밀[小麥], ‘모(牟)’는 보리[ =大麥]라 한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허신(許愼, 58~148)이 만든 동양 최초의 한자 자전(字典)인 『說文解字』에 의하면 ‘내(來)’는 까끄라기[芒]가 있는 형상을 따서 만든 것으로 밀을 뜻하였는데, 이른 봄철 밀을 천천히 밟아[ ] 주기 때문에 래(來)와 쇠( )를 합성하여 맥(麥)이란 단어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밀을 의미하는 맥(麥)은 보리가 널리 재배함에 따라 보리와 밀을 동시에 의미하게 되었고, 현재는 보리만을 의미하거나 맥류의 통칭으로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무[萊 ]는 보리음식이나 밀가루음식을 먹다가 혹시 있을 지도 모를 식체(食滯)를 예방하는 의미가 있음을 글자를 통하여 알 수 있다.
하지만 래(來)를 밀만이 아니라 보리를 포함한 넓은 개념으로 보아야한다고 『佩文齋廣 芳譜』(1708)에서는 주장하고 있어 고서에 나오는 래(來)가 문장에 따라 의미하는 것이 다르니 해석에 유념해야 한다.
우리는 보통 밀가루음식(라면, 국수, 칼국수 등)을 먹을 때 보통 단무지의 형태로 무를 먹는다. 이는 혹시 있을 지도 모를 국수[麵]의 독성을 무가 없애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에 대하여 『爾雅翼』에서는 ‘예전에 바라문(婆羅門) 스님이 와서 사람들이 국수를 먹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면서 말하기를 이것은 열이 많은데 어찌 이것을 먹는가. 이어 무를 같이 먹는 것을 보고 이것 때문에 국수의 성질이 완화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런 일이 있은 다음부터 국수를 먹을 때 꼭 무(단무지)를 같이 먹게 되었다’라고 하였다.
따라서 밀가루의 독성을 해독할 때에는 반드시 무를 씹으면 되는데, 이는 밀가루의 대열(大熱)한 성질을 무가 해독시킬 수 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그럼 사상의학적인 입장에서 무나 무씨를 태음인에게 주로 사용하고 있는데 그 이유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자.
무는 뭉친 것을 푸는 작용이 있다. 무는 자신의 영양분을 뿌리에 저장하는 뿌리채소에 속한다.
대부분의 뿌리채소는 뿌리가 흙 속에 있지만 무는 흙 속이 답답한 듯 뿌리의 머리가 흙 위로 솟구쳐 반쯤은 땅위로 나와 있다. 또한 무는 단맛도 있지만 톡 쏘는 매운맛이 있어 답답한 것을 풀어주는 작용이 있다.
사상의학에서는 무의 뿌리가 흙을 뚫고 위로 나오는 형상과 매운 맛이 있는 것을 보고 무가 호산지기(呼散之氣)가 있다고 보아 순환이 잘 되지 않아 몸이 찌뿌듯한 태음인이 무를 먹으면 좋다고 보았다. 실제로 무를 먹어보아도 무의 끝부분보다는 머리 부분이 더 맛도 좋고 밀가루독성을 제어하는데 더 효과가 좋은데, 이는 무가 솟구치는 성질을 이해하면 이해가 쉽다.
따라서 자기 스스로 소화시킬 수 있는 능력보다 더 많은 음식을 먹어 생긴 식체(食滯)에 무를 먹으면 풀어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무는 뭉친 것을 풀어주어 아래로 내리는 작용을 한다.
민간에서 소화가 잘 안될 수 있는 고구마를 먹을 때 무가 들어있는 동치미를 먹는 까닭도 이와 같은 이유이다. 메밀국수를 먹을 때 무즙을 넣는 것도 무가 뭉친 것을 풀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는 주독(酒毒)과 어혈을 풀어준다고 보았다.
가스중독에 걸려 몸이 경직된 것을 풀어주고 중화시켜주는 역할을 무가 한다. 이는 무의 호산지기(呼散之氣)를 이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예전부터 가스중독에 무가 응용되었기 때문에 연기에 질식된 사람에게 무가 좋다는 이야기가 내려오고 있다.
『普濟方』에 의하면 ‘이사(李師)라는 사람이 도적을 피해 석굴 속으로 피난하였다. 도적이 석굴 입구에 불을 때니, 연기에 질식되어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혼미한 가운데 근처에 있던 무 한 줌을 찾아 씹어 그 즙을 먹었더니 금방 소생되었다. 무는 작은 식물이지만 사람을 살리는 공이 이와 같다. 또한 석탄연기에 중독되어 죽으려고 하는 사람이 무 1조각을 입에 넣고 있으면 연기가 사람을 해치지 못한다. 또는 미리 무를 말렸다가 분말로 만들었다가 급할 때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또는 새로 떠온 물에 말린 무를 넣고 찧은 다음 마셔도 역시 가능하다’라고 하여 무가 연기중독에 좋음을 설명하고 있다.
당시 연기중독에 무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연탄가스에 중독되었을 때 무가 있는 동치미국물을 먹어 해독하는 민간요법도 여기에 근거를 둔 것이다.
무는 발산하는 기운이 강하다. 무를 먹어 보아도 햇빛을 받은 윗부분의 무가 아랫부분의 꼬리보다 더 맛이 있고 Vit C도 윗부분에 더 많다. 또한 무의 속과 껍질 가까운 부분을 먹어보면 껍질 가까운 부분이 더 맛이 있다. 이는 무가 발산하는 기운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밖으로 나가려는 기운이 많기 때문에 가운데 속에 바람이 드는 것으로 해석된다. 일반적으로 무가 바람이 드는 것은 10℃ 이하로 2주 이상 계속되면 꽃눈이 형성되어 꽃대가 오르게 되면 무에 바람이 들게 된다.
한번 바람이 들면 계속 바람이 들어가 점점 깊어지고 심해져 못 먹는 부분이 더 많아지게 되고, 바람이 든 무는 푸석푸석하여 맛이 없고 마치 고무질을 씹는 듯한 맛이 난다. 씨를 만들기 위해 무의 영양분이 소모되는 것으로도 해석하지만 사상의학에서는 발산하는 기운 때문으로 해석한다.
타박어혈과 코피에 사용하는 무는 뭉친 것을 밖으로 풀어주는 통외(通外)시키는 작용으로 볼 수 있다. 이덕무(李德懋, 1741~1793)는 ‘타박상으로 인하여 시퍼렇게 부었을 때 무를 이용해서 뜨겁게 찜질하면 곧 사라진다’라 하였다. 타박상을 입어 멍이 드는 것은 놀란 피가 뭉쳐서 생겼다고 이해된다. 따라서 막힌 것을 풀어준다는 의미에서 열이 솟구쳐 나타나는 토혈이나 코피에 무즙을 먹어 치료하였다.
두부를 만들 때 무를 넣으면 풀어지는 현상을 보고 무가 통외(通外)한다고도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간수의 도움을 받아 뭉쳐진 두부에 풀어주는 역할을 하는 무를 넣으면 두부가 되지 않는다. 이러한 것을 보고 무가 바로 밖으로 풀어주는 통외(通外)하는 작용이 있다고 해석된다.
보통 두부를 많이 먹어 나타나는 식중독에도 무가 좋다. 『本草綱目』에 ‘평소 두부를 좋아하던 사람이 식중독에 걸렸는데 의원이 치료를 하여도 효과가 없었다. 두부를 파는 사람이 말하기를 부인이 두부를 만들다가 무 끓인 물을 잘못하여 넣었더니 두부가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하였다. 의원이 이를 기억하고 환자에게 무 끓인 물을 주었더니 금방 치료가 되었다. 물리(物理)의 묘미가 이와 같다’고 하였다. 뭉친 것을 풀어주는 무의 성질을 의학에 응용한 경우로 보인다.
이와 같이 전통지식과 한의학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한의사는 더욱 더 주체적으로 전통지식의 국제적 보호기반을 구축하는데 앞장서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