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鄕藥簡易方』으로 조선초기 의술을 정리한 儒醫
權近(1352~1309)의 『陽村文集』과 徐居正(1422~1492)의 『東文選』에는 『鄕藥濟生集成方』의 서문이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는 하나의 역사적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한의학 인물인 徐贊에 대한 실마리를 풀어갈 수 있는 매우 짤막한 설명이다.
“우리나라는 중국과 멀리 떨어져서 이 땅에서 생산하지 않는 약은 구하기 어려운 것을 몹시 걱정하였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풍속이 흔히 한 가지 풀을 가지고 한 가지 병을 고치는 데 특효를 본다. 그 전에 『三和子鄕藥方』이 있었는데, 아주 간단한 요령만 뽑아 놓아서 보는 사람들이 너무 略式으로 된 것이 결점이라 하였는데, 요전에 현 判門下 權仲和가 徐贊이란 사람을 시켜 거기다 여러 방문을 보태게 해서 『鄕藥簡易方』을 만들었으나, 그 책이 세상에 많이 퍼지지 못하였다.”
이 기록을 살펴보면 권중화(1322~1408)가 徐贊이란 인물에게 명령을 내려서 고려 말기에 사용되었던 『三和子鄕藥方』을 보완해서 『鄕藥簡易方』을 만들었다는 것이며, 이 『鄕藥簡易方』이 불행히도 많이 퍼져서 사용되지 못하였음이 아쉽다는 것이다.
徐贊은 조선 초기에 『大明律』을 인쇄할 때도 그 인쇄를 담당했던 인물로서 활자의 역사에서도 중요한 인물이다.
1433년 완성된 『鄕藥集成方』에는 『三和子鄕藥方』과 『鄕藥簡易方』의 일부 내용이 수록되어 있는데, 특히 徐贊이 작업한 『鄕藥簡易方』의 내용은 17개 조문에 이른다. 대부분의 내용이 단방위주의 의료를 담고 있다. 이것은 위의 『鄕藥濟生集成方』서문에서 밝혔듯이 조선 초기의학의 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서찬에 대한 기록이 나오는 ‘향약제생집성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