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미숙 교수

기사입력 2009.06.30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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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마다 5월이 되면 깐느영화제(Cannes Film Festival)와 관련된 소식들로 영화잡지들은 물론, 주요 뉴스와 신문들도 야단법석이다. 하도 떠들어대는 보도 때문에라도 영화 한 편을 보기는 봐야겠는데… 하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징한(?) 모성’을 그렸다는 지인의 추천도 있고 김혜자씨의 강한 포스터에 이끌려 <마더>를 보기로 결정하고 출장갔던 청주에서 야밤에 혼자서 그렇게 영화 <마더>를 보게 되었다.

    김혜자씨의 묘한 춤사위로 아주 불친절하고 또 어색하게 시작되었던 영화는 곧바로 ‘바사삭 바사삭’ 낡고 어둡고 먼지가 가득 쌓여있는 듯한 가게에 앉아 마른 풀잎같은 것을 작두에 썰고 있는 김혜자씨의 얼굴로 이어진다. 가게 출입문으로 추정되는 문짝에 너덜너덜해진 광고 문구는 심하게 바래버린 ‘국산 한약재’ 라는 다섯 글자였다. 그 때 깨달았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마더는 시골동네에서 약재상을 하는 중년의 아줌마였다. 그리고 나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영화 <마더>에는 한의사인 내가 참고 넘어가기가 힘든 장면들이 꽤나 많이 등장한다. 한약과 침에 대한 몇 가지 에피소드들은 영화 전반에 걸쳐 효과적인 설정과 장치들을 제공한다.

    페인트가 다벗겨진 지저분한 동네담벼락에서 소변을 보고 있는 아들 도준(원빈)에게 흰색 사기그릇에 가득담긴 한약을 먹이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면서 다 큰 아들의 성기 혹은 소변줄기(?)를 관찰하는 듯한 엄마의 시선이 나온다. 약을 다 못 먹고 급히 버스를 잡아타는 아들을 원망하며 남은 한약을 아들의 소변 흔적 위에 뿌려버린다. 그리고 그 흔적을 없애려는 듯 엄마는 신발을 질질 끌어 그 길바닥에 비벼대어 본다. 보신(補身)주의의 상징으로 기억되는 한약의 이미지와 아들의 자양강장을 위해 한약을 먹이는 촌스러운 엄마의 행동이 오버랩되면서 버려진 한약과 배설된 소변이 뒤범벅된 길바닥의 지저분한 자국을 지우려는 듯한, 못내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던 엄마의 발길질은 더없이 민망하였다.

    난 그 장면에서 사용된 한약이 마더에게는 아들을 위한 지극정성 모성의 매개체로 사용되었다고 해석하였고 봉준호가 “모성도 욕망이다”라고 했던 이야기와 밀접하게 연관된 장면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지저분한 동네담벼락에서 소변을 보면서 한약을 먹어야 하는 장면에서 ‘한약이 저렇게 몰래 숨어서 불편하게 먹어야 할 정도의 부끄러운 유산으로 전락해 버린 것일까?’하는 위태로움을 느꼈다면 정말 이건 나만의 오버액션(overaction)일까?

    한약에 대한 또 하나의 중요한 장면이 있다. 결혼은 했지만 아기가 안 생겨서 김혜자씨한테 약도 받아 먹고 침도 맞는 사진관집 여자. 그 여자와 마더가 나누는 대화가 이렇다. “약 잘 먹고 있지? 내가 지어준 약 잘 먹으면 도준이 같이 이쁘게 생긴 아들 낳을 거야…”

    아기 낳게 해 주는 약? 게다가 이쁜 아들 낳게 해 주는 약? 숱한 처방집 부인과편에는 늘 어김없이 전여위남방(轉女爲男方)이라는 게 있었다. 태중의 딸을 아들로 바꿔준다는 비방. 그 장면을 보고 “아들낳는 처방이 있구나”라는 한약의 효험을 떠올리는 관객은 아마 없었으리라 생각된다. “역쉬, 한의학은 뻥카가 심해” 라고 뻔한 비판의 눈초리를 보냈겠지. 아들낳게 해 준다는 풍문에 쌓인 ‘비과학적인 한약’이라는 이미지를 강하게 한 점 찍고 <마더>의 한약은 다음과 같은 장면으로 또 이어진다.

    약재상을 관리하고 있는 공무원 나으리의 마나님으로 보이는 한 중년 여성이 약재상 안쪽에 쌓여있는 인삼 한뿌리를 들고 한마디 하신다. “이거, 국산 맞아? 중국산 아니야? 먼지낀 약재 꼬라지 하고는…쯧쯧쯧…” 마더의 어설픈 대답, “아니에요. 국산이예요. ” 힘없어보였던 불쌍한 마더의 눈빛…그 눈빛은 스러져가고 있는 한약시장을 애타게 바라보는 한의사의 눈빛과도 같았다. 한약을 확신할 수 없는 한의학의 불안한 시선 말이다. 이 나쁘고 까만 한약을 비싼 값에 파는 나쁜 한의사. 이 지긋지긋한 연결고리를 깔끔하게 끊어줄 해결책은 없을까? ‘한약재이력추적제도’가 해결해줄 수 있을까? 한약에 대한 긍정적 효과의 실험, 임상 논문들이 많이 쏟아지기만 한다면 이 부정적인 판도를 확 깨부술 수 있을까?

    <마더>에는 위의 한약 이야기와 함께 침에 관련된 장면들도 꽤 많이 나오는데 그 중 하나가 아까 그 사진관 여자에게 침을 놓는 장면이다. 화면 중앙으로 크게 클로즈업되어 잡힌 것은 다름 아닌 지저분한 침통이었다. 소독을 안 한 것만은 분명하고 수십번 재활용되고 있는 환도용 장침을 여자의 엉덩이에 푹푹 꽂아댔던 마더의 손. 그 손보다도 지저분한 침통이 유난히 강한 인상을 남기며 내 눈에 탁하고 꽂히는 것 같았다. 배움이 짧은 엄마가 생계를 위해 야매로 침술을 하러 다니는 설정은 퍽 극적이었다.

    또한, 아들의 무죄를 믿고 그 무죄를 풀어내기 위한 증거를 수집하는 과정 중에 동네 아낙들의 환심을 사려고 침봉사를 펼치는 장면에서 무질서하게 누워있던 아낙들의 몸 여기저기에 아무렇게나 꽂혀있던 침들이 화면에 크게 잡힌다. 그야말로 무면허 침술원을 고발하는 뉴스르포에나 나올만한 장면이었다. 그냥 봐 주기가 심하게 불편했다.

    그리고 영화 전반에 걸쳐 몇 번씩이나 반복되었던 특효혈에 관한 대사. “가슴에 응어리진 거, 한 맺힌 거…그런 거 한방에 뚫어주는 용한 혈자리가 하나 있어. ” 죄가 없는데 감옥에 들어가 있다고 생각하는 본인의 아들에게도, 그리고 아들의 무죄를 밝혀줄 유일한 목격자라고 믿었던 고물상 할배에게도 이 용한 혈자리를 들먹거리며 침통을 꺼내드는 마더의 모습.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들의 살인을 덮기 위해 또 다른 살인을 저지른 짐승같은 모성을 확인한 마더는 본인의 허벅지를 들추어서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풀어내기 위해 스스로 그 혈자리에 침을 놓고 침을 통해 본인의 한을 모두 풀어낸 듯 관광버스 안에서 고속도로 막춤을 추며 영화는 그렇게 끝이 난다. 이 장면에서는 한(恨)을 풀어내는 침의 효능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모든 걸 한방(one stop)에 끝낼 수 있어야 한방(Oriental medicine)이다” 라는 위험한 생각을 심어줄 수도 있는 설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영화 <마더>의 200만 흥행이 기분나쁘다. 저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가지게 될 한의학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과 그 부정적인 시각의 무비판적 확산이 못내 걱정스럽다. 영화 한 편 따위에 우리가 휘달릴 일은 물론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라고 하는 강한 파급력을 가진 문화를 통해 일반 대중들에게 시각적으로 각인되었을 잿빛 이미지의 힘은 생각보다 강하다. 더군다나 이 영화는 국제영화제에 출품되어 전세계 사람들의 일부가 영화 안에서의 한국전통의학에 관련된 장면들을 분명하게 보았을 것이고 또 기억할 것이다.

    이 이미지를 걷어낼 수 있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바로 한의학을 업으로 삼고 있는 우리들이다. 당연하게 여겨졌던 치료방법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겨우 치험일례에 대한 초라해보이는 임상보고라고 할지라도 한의학을 보다 굳건하고 명쾌하고 실질적으로 만드는 작업이라면 지금부터는 기꺼이 시작해보도록 하자. 새까만 한약의 이미지와 우리끼리도 통일되지 않은 답답한 용어의 벽에 갇혀있는 한의학을 다시 날아오르게 하자. 우리 학문에 만연해 있는 이 많은 오해와 불신의 그림자를 세차게 걷어내어 버리자.

    우리는 그동안 <허준>, <대장금>이라는 드라마들이 만들어놓은 한의학에 대한 신비한 이미지를 먹고 살았다. 한의학에는 뭔가 있을 것 같고, 뭔가 자연적인 치료를 해줄 것 같고, 과학으로 입증될 수 없는 형이상학적인 뭔가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이미지 말이다. 이미지에는 늘 환상이 뒤따르는 법이다. 과연 우리는 이러한 좋은 이미지에 부응하면서도 그 이면에 드리워진 환상을 뒤엎을만한 실질을 우리 스스로에게, 우리를 찾아와준 환자들에게 그리고 이 사회에 보여주었던가? 만일 그렇지 못했다면 뼈를 깎는 반성을 하고 이제부터라도 우리가 반드시 해내야 할 일들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영화 <마더>의 잿빛 이미지를 걷어내버리고 우리도 깐느영화제같은 국제무대의 레드카펫에서 자라나는 귀한 후배들과 함께 핑크빛 미래를 꿈꾸며 아직 개척되지 않은 블루오션에서 다같이 헤엄쳐보자. 그럴 날이 반드시 올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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