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을 위한 전제조건.
지난 호에서 저는 한의사가 서양의학 검사나 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이유로, 두 가지를 이야기했습니다.
첫째, 양방 치료나 정밀 검사가 필요한 경우를 빨리 파악하고 한방치료에 참고하기 위해서, 둘째, 한방치료의 효과와 안전성을 입증하는 근거 자료들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다른 논리로 포장된 상업적인 이유로 주장하지는 않았으면 하는 개인적 바람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개인 한의원에서 CT를 사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도 이것이 양의계-한의계의 전면전으로 비화한 것은, CT에 국한한 것이 아니라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 불가’라는 아주 포괄적인 결론으로 나갈 가능성 때문이었습니다.
청진기, 혈압계부터 시작해서 의료기기의 범주는 아주 다양하고, 그것을 한의사가 어떤 목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사용하는가도 다 다른데, 그런 식의 결론이 나면 안 되는 것이지요. ‘의료기기’라고 뭉뚱그릴 것이 아니라, 해당 기기 하나하나마다, 사용에 필요한 조건, 제한을 분명히 하고, 그 범위 안에서 허용되는 쪽으로 제도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서 관건은 ‘안전성’과 ‘기기 사용에 필요한 충분한 교육’입니다.
방사선 위험이 높은 CT 검사 등은 절대 남용되어서는 안 됩니다(CT 촬영을 많이 한 환자군에서 암 발생률이 높았다는 일본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수익을 올리기 위한 수단으로 남용하는 식의 양방 따라가기는 당장의 경영에 도움이 될지 몰라도, 결국 한의학을 망치는 독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위험성이 없거나 적은 것(초음파 등)은 연구목적으로는(검사비용을 따로 받지 않는 것) 허용되었으면 합니다.
물론 검사 시술과 판독을 위한 충분한 교육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학교 교육에서 1차 진료에 필요한 중요 생화학검사의 검체 채취 방법이나 검사결과 해석에 관한 교육이 강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실제 임상과 결부된 활용법, 주의사항, 어떤 경우에 정밀검사와 병원 의뢰가 필요한지 등에 대해서는 보수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비경, 이경, 초음파 등을 시술하고자 할 경우에는 보다 전문적인 시술법 교육이 꼭 필요합니다.
CT, MRI 처럼 위험성도 있고, 전문적인 판독이 필요한 것은 영상의학과(진단방사선과) 전문의가 판독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양방에서도 이런 원칙이 잘 지켜지고 있지는 않지만, “몇 시간만 특강 들으면 판독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 IMS나 침구사 문제에 있어서 한의사의 ‘전문성’을 어떤 근거로 주장할 수 있겠습니까? 예고된 것처럼 의료법이 개정되어 상호고용이 제도적으로 인정되고, 의원급의 협진이 더 활성화되면 이 문제는 상당 부분 해결될 수도 있어 보입니다.
혈액 검사는 간이혈액검사기를 사용할 수도 있지만, 검사기관에 정식으로 의뢰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한의원의 검체를 받는 것을 꺼리는 검사기관도 있고, 보험 처리가 되지 않으므로 비용 문제도 생깁니다.
하지만 오로지 ‘진료’와 ‘연구’를 위한 이런 검사들이 일반화되어 갈수록 한방의료행위로 인정되어 수가체계에도 들어갈 수 있는 날이 더 빨리 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이상은 전적으로 개인적인 생각이므로 많은 이견이 있으실 줄 압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도 생산적인 논의들이 이어지길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