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의학의 포스트모더니티
한의학은 근대(modern) 이후(post)의 의학이 아니다. 근대의학이 아니므로 포스트모던 의학도 될 수 없다. 하지만 한의학은 포스트모던성(性)을 가진 의학이다. 근대성(modernity)으로부터 배태된 의학이 아니므로, 한의학은 근대를 넘어서려는 포스트모던성[postmodernity]을 더 철저히 드러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포스트를 beyond라고 규정할 때, 포스트모더니티는 근대 이후를 꿈꾸는 사상가들의 작업에서 그 면면을 엿볼 수 있다.
특히 포스트모더니티는 근대적 인식의 ‘고정’, ‘고착’을 뛰어넘고자 하는 시도들에서 잘 드러난다. 해체(deconstruction), 탈영토화(deterritorialization), 지향성(intentionality) 등이 이와 맥을 같이 한다. 이와 같은 배경에서, 이 글에서는 고정을 전제로 하는 근대적 인식과, 그러한 인식을 넘어서려는 한의학의 인식에 대해 기술해보고자 한다.
한의학은 푸코(Foucault)가 ‘임상의학의 탄생(The Birth of the Clinic·1994)’에서 언급하고 있는 근대의학의 시선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의학대상을 고착화 시키지 않는다. 근대의학이, 그리고 그것의 현재형인 지금의 서양의학이 우리의 몸을 대상화하여 고정시키는 시선을 가지고 있다면, 한의학은 대상화의 고정을 거부하는 현상학적 시선을 가지고 있다.
메를로-퐁티(Merleau-Ponty)는 ‘지각의 현상학(Phenomenology of Perception·2002)’에서, “세계와의 직접적인 접촉을 다시 성취하기 위해 집중하는 노력”이라고 현상학을 정의하고 있다. 메를로-퐁티는 몸의 현상학을 주창하면서 세계와의 ‘직접적인 접촉’이 차단된 근대적 인식을 넘어서려 한다. 그러한 넘어섬이 한의학에는 이미 전제되어 있다.
한의학 진단은 세계[환자]와의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 이루어진다. 한의학 진단은 망문문절(望聞問切) 사진(四診)으로 이루어져 있다. 환자와 의사의 직접적인 접촉이 가시적인 절진을 예로 들어 보면, 한의학 진단은 ‘경험의 경험(experience of experience)’을 바탕으로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환자가 지금 경험하는 질병을, 맥을 통해서 다시 경험하면서 한의사는 맥진을 한다. 환자 몸의 고통이, 뜨는 맥(부맥), 혹은 가라앉는 맥(침맥) 등으로 나타나고 그 고통의 양태를 한의사의 몸이 접촉을 통해서 다시 경험한다. 한의사는 환자의 고통 양태를 제대로 알기 위해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맥이 잘 뛰는 손목의 위치를 파악하고 조금씩 맥이 뛰는 자리를 누르거나 누른 힘을 줄이면서 환자의 질병 경험을 경험하고자 한다. 맥진시 관찰되는 침묵, 한의사의 촉각에 대한 집중 등이 한의학적 접근의 조심스러움을 드러낸다.
서양의학과 한의학의 차이는 병명에서 잘 드러난다. 한의학의 병명은 서양의학의 병명같이 ‘고정’을 강조하지 않는다. 생의학 병명, 예를 들면 당뇨병, 간암, 역류성식도염 등은 의사의 시선을 혈관(혈관 속의 당)으로, 간으로, 식도와 위의 윗부분으로 시선을 고정시킨다. 하지만 한의학의 소갈, 습담, 기울 등의 병명은 한의사의 시선을 고정하지 않는다.
한의학 병명에서 엿보이는 일면 느슨한 지시에는, 주체(한의사)와 대상(환자)의 상호작용을 열어놓으려는 노력이 내재해 있다. 한의사의 환자에 대한 직접 경험이 병명을 구체적으로 규정하도록 내버려두는 배려이다.
또한 이 느슨함에는 환자 몸 전체의 상호 작용을 놓치지 않도록 하려는 의도가 녹아 있다. 이러한 열려있음을 통해서 한의학적 인식은 고정성, 혹은 박제화를 넘어선다. 서양의학의 관점에서 보기에 한의학은 느슨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느슨함은 대상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고정성을 희생한 결과이다.
진단 능력도 경험을 통해서 단련된다. 한의학에서는 진단기계와 같은 매개를 사용하지 않고 한의사 몸의, 환자 몸 직접 경험을 통한 진단 능력 단련이 중요하다. 메를로-퐁티의 지적처럼, 한의학은 인식된 대상(obejct perceived)보다는 인식의 경험(experience of perception)을 강조한다. 인식의 경험을 의학적으로 체계화 한 것이 한의학적 진단 능력으로 드러난다.
초심자와 관록있는 한의사의 차이는 지향성의 단련된 정도 차이이다. 초심자는 교육 현장과 진료의 현장에 자신을 노출시키면서 주체와 의학적 대상 사이의 지향성을 좀 더 견고한 지향성으로 만들어 간다. 한의학의 의학적 대상은 형, 색, 맥 등 초심자에게는 모호한 대상이다.
하지만 진단 현장에의 몸 노출을 통해서 한의사는 주체와 대상 사이 보이지 않는 지향의 끈을 만들어 나가고 그 끈을 튼튼히 한다. 수년간의 훈련과 임상 경험이 쌓이면, 한의사 주체와 한의학적 의학적 대상을 잇는 단련된 지향성은 관록있는 한의사를 가능하게 한다. 메를로-퐁티의 주장처럼, 한의학은 인식된 대상에 의해 체계화된 이상화된 지식을 무비판적으로 따르지 않고 인식의 경험을 체계화함으로써 진단의 능력을 만들어 간다.
근대적 인식은 주체와 대상을 고정화 한다. 주체와 대상의 대화를 허락하지 않으려 한다. 대상은 정해진 방식에 따라 시선을 받아야 하는 수동적 대상이다. 근대적 인식은 대상의 언어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한의학의 포스터모더니티는 근대적 시선의 고정, 박제화를 뛰어넘는데 있다. 주체와 대상 사이의 경험의 열려있음을 통해서 진단이 진행된다. 또한 대상의 경험을 체계화 하면서 한의사의 주체는 진단의 능력을 닦아간다. 괄목할 만한 것은, 근대적 시선이 고정시킨 대상과 주체의 박제화를 넘어서려는, 포스트모더니티의 담론들이 이미 한의학에서는 ‘실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러한 실천은 고통받는 사람들을 돕는 실천이다. 한의학에서 포스트모더니티는 이미 진행형이다. 한의학의 포스트모더니티는 현대철학이 봉착해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여할 수 있는 충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본 글은 홍릉캠퍼스 오프닝컨퍼런스에서 발표된 내용을 축약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