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변탁

기사입력 2013.10.11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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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기독한의사회 5박6일 의료봉사기
    필리핀, 내 생애 가장 값진 추석연휴

    한국기독한의사회(회장 고성열 제일한의원장·영천교회 안수집사)는 추석 연휴기간인 지난달 18일부터 23일까지 5박6일간에 걸쳐 필리핀 마닐라 인근 빨리빠란 지역에서 단기의료봉사를 실시했다. 이번 의료봉사는 김병로 지도목사(부광한의원장)을 비롯한 한국기독한의사회 회원 한의사 5명과 가족 등 총 14명이 동참, ‘기아대책’의 파견을 받아 현지에서 사역을 하고 있는 윤봉노·이영란 선교사님을 도와 연인원 600여 명에게 침·뜸·부항 치료를 시행하고 준비해 간 한약, 건강기능식품, 영양제 등을 공급해 현지인들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편집자주>

    한국기독한의사회는 크리스찬 한의사들을 중심으로 지난 2005년 10월에 창립된 기도·선교·봉사 단체이다. 2007년 캄보디아를 시작으로, 2008년엔 중국 장백(長白)·단동(丹東), 2009년 말레이시아·미얀마, 2010년 필리핀, 2011년 태국 방콕, 2012년 몽골 울란바토르·태국 타이야이 지역에서 한의사 원장과 가족들이 여름휴가나 추석연휴를 이용해서 해마다 1~2차례 의료봉사를 벌여왔다.

    금년에도 봄철에 의료봉사 지역에 대해 여러 후보지를 놓고 논의를 한 끝에 결국 3년 전에 다녀왔던 필리핀 빨리빠란 지역을 선택했다.

    필리핀, 50년 전으로의 시간여행
    필리핀은 면적이 30만㎢로 남북한의 1.5배이고 인구도 1억명에 가까운, 섬나라치고는 매우 큰 나라이다. 6.25 때는 한국을 지원해 준 나라이고, 1960년대엔 1인당 소득이 한국의 3배에 달할 정도로 잘 사는 나라였다. 최근 인터넷상에서는 60년대초 장충체육관을 필리핀이 지어준 것이라는 이야기도 떠돌 정도였으니…(물론, 결국 사실무근임이 드러났지만…).

    하지만, ‘이멜다의 신발’로 상징되는 마르코스 등 정치지도자들의 장기집권과 부패의 연속으로 인해 현재는 1인당 소득이 한국의 10분의 1 수준인 2000달러에 그치고 있다. 그나마 150개 유력부족이 전체 국부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서 일반인들의 소득은 1000달러도 안될 정도로 빈부격차가 매우 심한 나라이다.

    3년 전에 의료봉사를 위해 처음으로 찾았던 빠라냐께, 빨리빠란은 너무나 참혹한 지역이었다. 마닐라 인근의 빈민가 슬럼가 중 퀴퀴한 냄새가 자욱한 아파트 모양의 도시공동묘지, 무덤 사이 빈 공간에서 잠자고 뛰어노는 아이들, 우리가 나눠준 빵을 하나라도 더 잡으려고 악다구니를 하던 그들의 모습, 빵과 말씀을 들고 사랑으로 수고하시는 선교사님의 사역을 통해 조금씩 조금씩 변화해 가던 초롱초롱한 어린이들의 꺼무스리하면서도 빛나는 얼굴들이 좀처럼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해서 우리는 다시 필리핀을 향했다. 마치 6.25전쟁 후 우리나라의 곤고했던 60년대로 시간여행을 하는 기분으로.

    태풍과 폭우의 장벽을 넘어…
    18일 새벽 4시에 기상, 황급히 잠자는 아이들까지 깨워 허겁지겁 셔틀버스를 타고 6시 인천공항 라운지에 모여든 일행들. 의료봉사 및 교육사역을 위해 준비한 공용짐을 한보따리씩 나눠 수하물 센터에 부치고 서둘러 항공탑승라인에 선다. 하지만, 이날따라 인천공항은 추석연휴 해외여행객들로 북새통을 이뤘고, 결국은 길게 늘어선 줄을 기다리다, 출발시각인 8시에 간신히 탑승할 수 있었다. 부족한 잠을 보충할 새도 없이 도착한 마닐라 공항, 하지만 우리는 현지 운전기사로부터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들어야 했다. 큰 태풍이 필리핀에 몰려온다는 뉴스. 의료봉사를 위해 좋은 날씨를 달라고 기도했지만 하루에도 몇 차례씩 큰비가 오락가락. 많은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본격적인 의료봉사를 벌인 첫날인 20일 아침이 되자, 밤새도록 숙소 함석지붕을 때리며 내리던 폭우가 거짓말 같이 그쳤고, 다스마리나스 침례교회 인근 농구장에는 이미 수많은 주민들과 청소년들이 진료를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서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다섯 개의 진료팀과 함께 접수·투약팀으로 나누어 아침부터 저녁까지 줄곧 진료를 시행했다.

    필리핀은 비교적 습하고 더운 지역이지만, 주거환경이 좋지 않고 기본적인 의약품이 갖춰지지 않은 탓인지, 전 연령층에서 영양결핍과 면역약화가 나타났으며, 50대만 넘어도 마치 우리나라의 70대 노인과 같은 외모와 건강상태를 나타내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부분의 남자 가장들은 건설 일용노동직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아서 대부분 근골격계의 통증을 호소할 뿐 아니라, 고혈압 당뇨병 등 기본적인 혈관계질환도 거의 관리가 되지 않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늘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주거환경과 생활방식의 문제탓인지 대다수의 청소년과 어린이들은 감기나 비염, 폐렴 같은 호흡기 질환에 노출되어 있었다.



    진료 둘째날인 21일에도 큰비는 계속되었다. 빨리빠란 인근 농구장은 지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방에 벽이 없는 열린 구조라서 비바람이 들이쳐 바닥이 미끌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우산을 쓴 채 치료를 기다리는 주민들의 발걸음은 끊이지 않았고, 결국 연인원 600명에게 침과 뜸, 부항, 한약제제, 비타민제, 영양제 등을 나눠주면서 성황리에 진료를 마칠 수 있었다.

    봉사단원 70%가 장염으로 고생
    날씨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큰비와 습한 기후에서 보내다 보니, 진료 첫째날 저녁부터 우리 일행의 건강에도 하나씩 둘씩 어려움이 생기기 시작했다. 한의학에서 말하는 ‘불복수토(不伏水土)’의 증상이 나타난 것. 오후가 되면서 여기 저기서 뱃속이 더부룩하고 가스가 차면서 거북하다고 하더니 급기야는 단원 중 70% 가까이가 설사를 하고 구토도 하면서 복통과 두통을 호소하는 급박한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첫날 새벽 일찍부터 잠도 못자고 3일 동안 무리한 뒤에 드디어 모두들 장염에 걸리게 된 것.

    가져간 한방소화제를 먹고, 응급으로 서로에게 침 치료를 하면서, 더욱 열심히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낮에는 현지인들을 열심히 치료하던 사람들이 밤에는 환자로 변해 서로를 위로하고 보듬어 줄 수밖에 없었다. 그 밤은 고통을 받은 단원에게도, 나머지 사람에게도 너무도 지루하고 길었던 하룻밤이었다. 하지만 아침이 되자 모두들 어려움에서 회복되어 다음 사역을 준비할 수 있었으니, 지금 생각해도 너무도 아찔하면서도 감사한 하루였다.

    선량한 눈빛들, 아름다운 만남
    단지 의료봉사만으로 필리핀 사람을 섬긴 것은 아니었다. 봉사를 하는 사이사이에도 가족과 자녀들은 현지 어린이들에게 다가가서, 사랑의 스티커를 붙여주고, 준비해간 사탕과 비타민, 초콜릿 등을 나눠주면서 서로 품어주고 가까워져 갔다. 아울러 여러 가지 시청각 교육자료를 통해 그들에게 성경말씀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둘째 날 저녁에는 진료를 마친 뒤 현지 선교사님이 매일같이 현지인들에게 식사대접을 하는 과정인 이른바 ‘밥퍼(feeding)사역’에 동참하는 기쁨도 누리게 되었다.

    아침이면 서먹서먹하던 현지인과의 관계는 하루를 뒹굴면서 함께 놀고 웃고 울고 즉석사진을 찍어 나누면서 너무도 친해져, 저녁이면 헤어지기 아쉬워하는 관계로 변해 있었다. 마지막 날에 현지 학생들이 우리를 위해 축복하고 특송을 부를 때, 우리 봉사팀원들이 너무나 감동을 받고 서로 껴안고 함께 울면서 감사와 기쁨을 나누던 아름다운 장면은 오래도록 모두의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으리라. 폭우와 장염의 고통 속에서 팀원들의 5박6일은 매우 고단하고 힘들었지만, 필리핀 친구들에게 우리의 자랑스러운 한의학적 치료기술인 침·뜸·부항·한약을 통해 작으나마 사랑으로 섬길 수 있었음에 대해 너무 감사를 드린다. 필리핀에서 둥그런 보름달은 볼 엄두도 못 냈지만, 이번 추석이야말로 봉사단원 모두에게 생애 가장 귀하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번 의료봉사에 격려와 후원을 아끼지 않으신 서울시한의사회, 중랑구한의사회, 경방신약, 아이월드, 허브큐어와 개인후원자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많은 한의사 선후배님들께서도 앞으로도 한국기독한의사회의 의료봉사에 많은 관심을 갖고 동참, 후원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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