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열 명예교수

기사입력 2013.05.31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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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과 사이좋게 지내십시오”
    귀락당 낙우재 편지-8

    어느새 우리 나이가 망팔(팔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가까웠습니다. 그러니 몸에도 많은 변화가 왔습니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려면 나도 모르게 “아이구, 아이구, 허리야”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옵니다. 그런데 마음은 여전히 변하지 않은 채 이팔청춘입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몇십년 전에 죽은 허장강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가 어떻게 죽었습니까? 서울운동장에서 예술인 축구대회 때 공차다 죽지 않았습니까? 여러분들도 운동장에 나가 공을 한번 차 보십시오.

    마음엔 세게 찰 것 같아 차지만 공이 지나간 뒤에 발길질이 나갈 것입니다. 헛발질 말입니다. 그게 몸이 변했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그때서야 우린 “아, 이젠 몸이 말을 잘 안 들어”합니다. 그런데 그게 자연의 이치입니다. 그러니 나이가 먹으면 병이 생기는 것은 자연의 순리입니다. 문제는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느냐 하는 각자 마음의 태도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대처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부정적으로 거부해 속을 썩이느냐 입니다. 아닙니다. 몸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언젠가 90세 할머니가 병실을 찾았습니다. 이 할머니는 60대부터 우리 한의원을 찾는 단골 환자이십니다. 그런데 몇 년째 안 보이시다 오랜만에 찾으셨습니다. “할머니, 오랫만이시네요. 그래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하고 인사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할머닌 “선생님, 저 오랫만에 들렀죠? 그동안 저는 아픈 맛으로 살았답니다. 병하고 사이좋게 놀며 지내고 있어요” 하시지 않겠습니까? ‘아픈 맛’, ‘병하고 사이좋게 놀며’ 이 얼마나 감동적인 말입니까? 나는 이 말을 듣는 순간 이 할머니야 말로 삶을 터득한 진정한 도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 이런 경우가 있었습니다. 어느날 척추관 협착증으로 고생하고 있는 70대 아주머니(도저히 할머니로 안 보인다)가 내원해 가끔 다리에 마비가 오면서 소변이 자주 나온다고 호소하면서 “그래서, 외출할 때 패드대고 나가요. 얘들이 색깔별로 별거별거 다 사다 줘요(깔깔 웃는다).” 그래서 내가 “걷는 건 좀 어떠세요?” 하고 여쭈었습니다. 할머닌 “가다가 다리가 터질 것 같으면 1분 정도 쉬었다가 가면 돼요. 그래도 높은 구두도 가끔 신고 다녀요.” 이처럼 자기 몸하고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상의하며 지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방광아, 오줌이 새니? 그럼, 어떡할까?” “그래, 그럼 어려서 기저귀 차듯이 패드대고 다니면 되지.” “다리가 터질 것처럼 아픈 데. 어떡할까? 쉬었다 가자.” “수술받아볼 생각은 안 해보셨어요?” “수술? 아유 그건 싫어요(손사래를 친다). 난 약 잘 들어요. 그것도 뭐 잘 안 먹지만... 몇 년 전에 골다공증 약도 먹다가 아픈 데도 없고 해서 말아버렸어요.”

    대학에서 내과 교수를 하고 있는 후배와 저녁식사를 하며 이런 얘기를 하니, 후배는 자신이 겪은 어느 폐암환자 얘기를 했습니다. 여러 가지 항암치료를 했으나 암은 점점 더 자랐고 호전이 없었다고 합니다. 의료진은 치료를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1년쯤 지나 이미 죽었으리라 생각했던 환자가 허허실실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웃으며 병원에 나타났고 가슴 사진을 다시 찍었습니다. “그 사진을 보니, 암이 더 이상 자라지 않고 정상 조직과 한 몸이 되어 함께 어울러 살고 있는 것 같았어요. 마치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이랄까요?”

    학생 때 충치 치료를 받으러 간적이 있었습니다. 어금니에 홈을 따라 까만 선이 보이는데, 먼저 젊은 치과 선생님이 보더니 파내고 아말감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 때 나이 지긋한 치과 선생님이 오셔서 갈고리 같은 기구로 긁어보고 두드려 보고는 젊은 치과 선생님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액티브(Active, 활성)같아? 내가 보기엔 인액티브(inactive, 비활성)야. 그냥 두는 게 좋겠어.” 그래서 내 어금니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50년이 지나도록 이제까지 인액티브로 변함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자신의 몸의 변화를 받아들인다는 것, 노화 현상을 받아들인다는 것, 그리고 병과 아울러 잘 산다는 것, 여기에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어떻게 내 몸을 이해하고 받아들일지, 어떻게 사이좋게 지낼 것인지, 어떻게 새로이 자신의 태도를 재정립해 나아갈 것인지를 생각하는 지혜 말입니다.

    초보 운전자는 커브 길이 나타나면 당황해 합니다. 하지만 운전을 계속 하면 점점 요령이 생기게 됩니다. 커브 길에 들어서기 전에 속도를 줄입니다. 핸들을 한 번에 확 틀지는 않습니다. 슬금슬금 굽은 길에 맞춰가며 조금씩 돌립니다. 일단 커브의 흐름에 안착하고 나면 이제 속도를 내도 좋습니다.

    내 몸의 상태를 받아들이는 것도 이와 비슷합니다. 하지만, 누구라도 병에 걸리면 두렵습니다. 겁이 나고 걱정되고 침울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그렇다고 두려워 할 수만은 없습니다. 그러니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여 몸과 사이좋게 지내십시오.

    -김포 허산자락 귀락당 낙우재에서 포옹 한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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