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열 명예교수

기사입력 2013.05.24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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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은 둔감하십시오”
    귀락당 낙우재 편지-7

    나는 어린 시절을 임진강 건너 아주 조그마한 산골마을에서 자랐다. 그때 어른들께선 이렇게 말씀하셨다. “서울 가면 종로거리가 있는데, 거기선 정신 바짝 차려야지. 그렇지 않고 눈 감으면 코 베어간다.” 그 후 6.25 동란으로 피난을 나와 서울에 살아보니까 “눈 감으면 코 베어간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실감하게 되었다. 그 땐 아무리 시골에서 똑똑하다는 사람들도 서울에 오면 바로 촌놈인 줄 알 수 있었으니까.

    아마 독자 여러분 중에도 시골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고등학교(경동)를 들어온 사람 중에는 서울 본교 학생들에게 시달림을 받은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땐 시골사람들이 서울사람을 보고 ‘서울깍쟁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지금은 서울사람이고 시골사람이고 모두 깍쟁이가 되었다. 오히려 지금은 시골사람들이 더 깍쟁이가 돼 한 수 더 떠 눈 뜨고도 코 베가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면 왜 이런 세상이 됐을까? 거기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환경의 변화다. 또한 사회환경이 변함에 따라 문화환경, 생활환경이 바뀌고 의식마저 바뀌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어머니들이 자식들이 놀러나갈 때 “얘야, 혹시 놀다 누가 때리면 같이 때리지 말고 맞아라. 때린 놈은 다리를 오무리고 자도 맞은 놈은 다리를 펴고 잔단다”고 하셨다. 아마 지금의 젊은 엄마들이 이 이야기를 듣는다면 기절초풍해 나가자빠질 것이다.

    “아니, 왜? 맞고 들어와 이 바보 같은 멍청아!”하고 밖으로 내몰 것이다. 그러니 요즘 얘들은 너도나도 모두 영악해 졌다. 그 가운데 마음 여리고 착한 아이가 있으면 그 애는 영리하고 똑똑한 아이들로부터 왕따를 당한다. 그래서 요즘은 이 왕따가 사회적 문제로까지 대두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요즘의 젊은 엄마들에게 있는 것이다.

    만일 여러분들의 손자가 혹시 밖에서 놀다 맞고 들어온다면 여러분들의 며느리는 무엇이라 할까? 빠릿빠릿하고 똑똑한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때론 어리석고 바보스러운 것이 좋을 때도 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똑똑해서 손해보는 경우가 많다. 나는 이전의 글에서 독자 여러분들께 “마음의 꽃밭에 긍정의 꽃씨를 뿌려 긍정의 꽃을 활짝 피우십시오”라고 하여 긍정을 강조했었다. 그러나 이 긍정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것이 아닌 억지로 쥐어짜서 나온 것이라면 오히려 바람직하지 않다.

    강압적 긍정의 과잉은 오히려 강박과 좌절과 더 큰 불안을 불러온다. 즉 긍정의 강박이라는 모순에 빠진다는 말이다. 그러니 긍정이 항상 바람직하지는 않다. 우울한 일이 있다면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어 실컷 우울해 하시고, 화가 난다면 산에 올라가 천지가 떠나가게 고함을 질러 화를 풀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잠시 눈을 감고 묵상을 하자. 그 때 무엇인가 떠오르는 게 있으면 놓치지 말고 꽉 쥐어 잡자.

    한병철은 그의 책 <피로사회>에서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질병이 있다”고 하면서 인류는 타자성이 분명한 면역학적 사회를 지나 과도한 자기긍정이 오히려 폭력이 되는 신경증적 사회로 접어들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지나친 행동은 지나친 수동성을 야기한다. 따라서 인간의 본원적 능력인 ‘머뭇거리는 능력’, ‘중단하는 능력’, ‘한가함’ 등 그동안 잊었던 능력들을 필요로 하여 찾게 된다.

    요즘 여기저기서 인기를 끌고 있는 ‘올레길’이 바로 이 때문이다. 나는 오늘도 허산 능선을 따라 오솔길을 혼자서 어슬렁어슬렁 걷고 왔다. 즐거운 하루였다. 또 와다나베 준이치는 그의 저서 <둔감력>에서 둔감한 사람들을 예찬했다. 예를 들어 비난의 말을 들어도 ‘예예’ 건성으로 대답하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는 사람, 나쁜 일이 일어나도 바로 잊어버리는 사람, 언제 어디서라도 잠을 잘 잘 수 있는 사람, 음식을 까탈스럽게 가리지 않고 먹는 사람 등 이런 둔감한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더 건강하고 따라서 몸도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세상을 행복하게 살려면 예민함의 함정에 빠지지 말고 이렇게 둔감해지라고 권하고 있다. 맞는 말이다. “모난 돌이 정에 맞는다”고 실제 삶 속에서 보면 똑똑해서 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 ‘망각’ 또한 커다란 치유의 힘이다. 망각은 의학적 용어로 ‘건망증’을 말한다. 얼마 전에 TV를 보니까 이 건망증이 병이냐, 아니냐로 논쟁을 하는 것을 보았다. 건망증은 질병이 아니라 생리적 현상이다. 물론 우리가 병이라고 여기는 모든 것이 다 그렇다.

    그래서 장두석은 <병은 없다>는 책을 쓰기까지 했다. 망각이 치유가 되는 이유는 이러하다. 예를 들어 큰 충격을 받은 사람이 일시적으로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을 상실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우리 몸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전을 발동하여 기억과 의식 사이를 차단해 버렸기 때문이다. 만일 사람에게 잊어버리는 기능이 없어서 모든 것을 자세히 기억하고 축적하며 산다고 상상해 보라. 얼마나 힘이 들겠는가? 그러니 망각은 조물주가 우리에게 준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김포 허산자락 귀락당 낙우재에서 포옹 한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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