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열 명예교수

기사입력 2013.04.12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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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 사람은 살고, 죽을 사람은 죽는다”
    귀락당 낙우재 편지-4

    얼마 전에 50대 중년 남자가 병실을 찾아왔다. 연말 휴가에 등산을 하다 다리를 삐끗해 발목을 다쳤다는 것이다. 그러니 침을 좀 맞고 싶다고 한다. 진찰을 해보니 힘줄이 좀 늘어나 주위에 염증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그래서 핫백을 한 뒤 침을 놓고 물리치료를 해주면서 생지황이란 생약을 주었다. 생지황(Rhizoma Rehmanniae)은 현삼과에 속한 다년생 초본의 근경으로 윤택하고 즙액이 많으며 성질이 매우 차서 청열량혈(열을 식히고 피를 서늘하게 함) 작용이 있다.

    따라서 예전부터 이 약은 다쳐서 붓고 쑤시는데 진통 소렴의 찜질약으로 쓰여 온 것이다. 이 생지황을 말린 것이 건지황이고, 술로 찐 것이 숙지황이다.

    숙지황은 한의학의 대표적 보혈약이다. 며칠 치료하면 나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랬더니 옆에 동행한 부인이 보고 “이상 없겠습니까? 만져만 보고 어떻게 알지요? 다른 정밀 검사 안 해봐도 되나요? 비싼 검사도 괜찮으니 검사받게 소견서 써주세요. 우리 남편 몸은 아주 소중하거든요.”

    이 때 의사는 어떻게 하여야 할까? 요즈음 병원에선 첨단 장비들을 경쟁적으로 갖추고 있다. 어느 병원에서 로봇을 들여놨다 하면 연이어 다른 병원들도 일단 물색을 갖추고 본다. 좋고 나쁘고 효과를 따지는 것은 그 다음이다. 70년대 누구네 집에 냉장고 샀다고 하면 우리 집도, 누가 칼라 TV 들여놨다고 하면 우리 집도 하는 것과 비슷하다. CT, MRI, PET 모두 고가의 영상 장비들이다. 500억 양성자 치료기도 있다. 중소병원의 처지도 비슷하다. 심지어 요즈음은 한의원에서 까지도 기계를 들여놔 한의원인지 병·의원인지를 구별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규모가 작으면 작은 나름대로의 경쟁이 있다. 그러면 왜 이런 현상들이 일어나는 것일까? 요즘 현대인들은 무엇인가 눈으로 보지 않으면 믿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 때 배운 ‘백문이 불여일견’을 철저히 실행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현상들은 배운 사람들 층에서 더하다. 그래서 그들은 무슨 첨단 진단을 한 것을 마치 고등학교 시절에 개봉 영화 보고 와서 친구들에게 자랑하는 것처럼 어깨에 힘을 주고 떠벌린다. 그러면서 자기는 첨단을 걷는 사람이라고 자랑한다.

    과연 그럴까? 나의 결론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병원은 이러한 환자들의 심리를 꿰뚫어 본다. 그걸 잘 이용하는 병원 경영자가 유능한 경영자다. 그러니 병원 경영자는 남을 안 따라갈 수 없다.

    그러나 병원 입장에선 이런 식의 의료장비 경쟁에 발을 들여놓으면 이제 악순환의 고리에 들어선 것과 같다. 사다 놓은 기계를 활용하기 위해서 아마도 더 많은 검사와 더 많은 시술을 하게 될 것이다. 과잉 진료의 싹이 튼다. 그런데 그런 내용을 잘 아는 사람이 의사들이다. 그래서 양심적인 의사는 검사나 시술을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권하지 않는다.

    앞의 다리 삔 환자의 경우에도 임상상 방사선검사(엑스레이)를 할 필요가 없다. 이런 경우에도 어떤 의사는 처음부터 무조건 엑스레이 찍자는 의사가 있는가 하면 찍어 달라고 해도 안 찍어주는 의사가 있다. 이때 여러분들은 어떤 의사를 용한 의사라고 하는가? 우리 동기 중에도 그런 의사가 있다. 그래서 그는 임상 현장에서 협잡배들과 타협을 못해 충청도 어느 두메 산골짜기로 밀려가 혹시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전화가 오지나 않나 가슴 조리면서 밤잠을 못자는 친구가 있다.

    여러분은 그를 보고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친구 그래 S의대 나와서 그런데 가있어. 공부만 할 줄 알지 세상사는 요령을 모르는 친구야” 하지는 않았는지?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시대에 그런 친구와 같은 의사가 많아야 선진국 대열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의료 현장에서 볼 때 검사하라면 뭔가 나올 것 같아 검진 안 받는다는 환자들도 상당히 많다. 요즘 많은 병원들은, 마치 마트에 가면 우유에 요구르트를 덤으로 테이프에 붙여 주듯이, 기본검진에 덧붙여 척추 CT나 MRI를 덤으로 더 해 주는데, 이렇게 하면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십중팔구 디스크가 나온다.

    또 장 검사를 하면 용정이 나온다.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 없고, 검진해서 이상 안 나오는 사람 없다. 찾으면 찾을수록 나온다 하지만, 정작 필요한 것은 못 잡고 대수롭지 않은 것만 찾아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몇 년 전에 어느 저명한 의사 선생님 한 분이 말기 췌장암으로 갑자기 가셨다. 진단받기 바로 두 달 전에 본인이 근무하던 우리나라 최고라는 병원에서 고가의 초정밀 검진을 받았고 본인이 직접 검사결과까지 확인했다고 하는데, 그 때는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었다고 한다.

    검진이 모든 병을 다 밝혀내는 요술방망이가 아니다. 검진을 통해 질병을 제 때 발견해서 적절한 치료를 받아 완치할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그러나 검진과는 별개로, 살 사람은 살고 죽을 사람은 죽는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래서 옛 어른들이 ‘인명은 재천이다’라고 하셨나 보다. 찾아내는 데에 시간 쓰고 돈 쓰고 에너지 쓰느니, 그럴 바엔 차라리 그 시간에 내 몸의 체력 기르는데 그 공을 들이는 편이 훨씬 낫지 않을까? 70평생 살았으면 됐지 뭐 그리 더 살려고 욕심을 부리는가? 오늘은 그만 쓰고 산에나 오르겠다. 사랑해!!!

    -김포 허산자락 귀락당 낙우재에서 포옹 한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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