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유숙 원장

기사입력 2012.10.16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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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화타의 후예인가
    개원가 일기

    학생 때 전설적인 명의인 편작이나 화타가 많은 환자를 잘 치료해냈지만 그 중에서는 사망에 이른 환자도 많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그래, 의사니까 그랬겠지’, ‘당시에는 여러 가지 여건이 나빴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라고 그저 가볍게 생각하고 넘어갔었다.

    한 환자에게 얼굴 매선침 시술을 했다. 염증이 생겼다. 항생제를 처방받고 있지만 염증이 가라앉지 않고 몇 개월째 진행되고 있다. 피부과에서 항생제 처방을 받고 아산병원에서 조직검사를 하면서 한의원에서 매선 시술을 받았다는 이유로 환자는 매우 부정적인 예후에 대한 설명을 듣고 불친절한 진료를 받아야만 했다. 불법시술 운운하며 한의사를 매도하는 말들도 당연히 뒤따랐다. 환자 자신도 한의원에서 시술을 받았다고 하면 어떤 험한 소리를 들을지 몰라서 양방피부과에 가기를 무척 망설였었다고 여러 번 말했다.

    그런 엉터리 말을 한 진료 교수님에 대해서도 분하고 억울한 마음이 있긴 했지만 아마도 그 분이 의사로 살면서 위기가 없으셔서 그랬을 거라 생각한다. 그는 나를 진지한 한명의 의사로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환자를 진료하며 울고 웃으며, 상태가 나빠진 환자를 생각하면서는 아침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조직검사를 받으러 간 환자가 별 이상 없이 빨리 나을 수 있다는 검사 결과가 나오길 기다리며 밤잠을 설치는 그런 마음이란 것을 가진 의사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마음 속에 들어있는 한의사에 대한 부정적 감정의 한 대상으로 상상해 버렸을 것이다.

    나도 그랬었다. 항생제, 스테로이드, 호르몬만 남용하는 양의사에 대해 뿌리 깊은 불신이 있었다. 인체의 생명력을 강화시키려는 노력은 없이 수술을 쉽게 결정하고, ‘수술은 성공했지만 환자는 사망했습니다’라고 말하는 의사들을 비난하는 마음만 있었다. 이번에 나는 매일 수술대 앞에 서는 의사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환자의 생명 자체를 담보로 하는 피 말리는 수술을 자신의 인생으로 삼고, 술로 피 냄새를 지운다는 외과의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족 중에 수술을 주로 하는 의사가 있는데 다음에 만나면 따뜻한 밥상이라도 차려줘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의사는 그냥 하나의 직업이 아니다. 낭만적으로 생각했던 것처럼 고통받는 이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좋은 직업이 아니다. 의사는 한 생명에 대해서 책임을 질 수 있는 엄중한 위치에 있는 자이다. 책임지기 싫고, 거리를 유지하고, 가벼운 질환만 보는 김여사형 의사가 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운명을 짊어진 존재다. 의사는 그 어느 누구도 김여사가 될 수 없다.

    환자가 안 좋아진 초기에는 무척 괴로웠다. 내가 의사로서 부족했다는 자괴감도 들고 환자의 면역체계가 떨어져 있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한방을 무조건 나쁘게 말하는 양방의사들에게 원망도 들으면서 진료에서 도망가고 싶었다. 내 책임이 아니라고 환자의 상태가 약해져 있는 것이라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을 들으며 위로를 삼고 싶기도 했다. 내가 보던 환자를 한방이 아닌 양방체계 속에 진료 의뢰를 하며 쓸데없는 비난을 듣고 이중 삼중의 맘고생까지 해야 하는 한방의 위상에 절망감이 생기기도 했다.

    시간이 좀 지나면서는 ‘이 시간도 곧 지나가리라, 제발 환자가 빨리 회복되기만을 바라자’하며 버티었다. 환자에게 미안했다. 위독한 병에 걸려서 수술을 하다가 나빠진 것도 아니고 더 예뻐지고 좋아지려고 하다가 이런 고생을 하게 되었으니…. 도망가고 싶은 마음은 아니어도 미안하고도 괴로웠다.

    예상했던 것보다 시간이 더 지나니까 어쩔 수 없이라도 이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기 시작하게 되었다. 나의 잘못이 아니다. 환자의 잘못도 아니다. 그러나 내가 감당할 수밖에 없다. 환자는 몸의 고통으로 감당하고 있다. ‘수술은 성공했으나 환자는 사망했습니다’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외과의사처럼…. 이것이 의사의 운명이다.

    마음이 따뜻한 의사말고 환자를 책임지는 의사가 진짜 의사의 운명인가보다. 편작이나 화타보다 실력이나 열정이 떨어질지는 모르지만 환자를 책임지고 책임에 따른 여러 가지 것들을 감당해야 하는 운명에 있어서는 나도 화타의 후예일 수밖에 없다.

    추신1: 더이상 항생제에만 맡겨두지 않고 한방치료도 병행해가고 있다. Good luck to us!
    추신2: 자신이 시술했어도, 어느 누가 했어도 그 때의 그 환자는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라 위로해주신 거울피부과 원장님, 정말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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