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연 원장

기사입력 2012.05.08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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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 순서가 틀렸잖아요!
    개원가 일기

    아이들을 진료하다보면 아이들의 성향이 뚜렷하게 보이는 경우가 많다.
    진료할 때 누가 잡는 것을 싫어해서 자기 혼자 알아서 해야 하는 아이가 있는 반면에 엄마 없이는 아무 것도 못 하는 아이가 있으며, 진료할 때 자기 귀에 귀지가 있는지 없는지 꼭 확인해야 하는 아이도 있고, 진료보다 진료가 끝난 후에 주는 사탕에 더 관심이 많은 아이도 있다.
    진료받는 것을 너무 좋아하는 주현이.

    주현이는 비염 때문에 오랫동안 병원에 다니기도 했고 워낙 진료받는 것을 좋아하는지라 진료순서를 다 외워버렸다. 그래서 진료실에 들어와서 인사를 하고 진료의자에 앉으면 바로 자기가 윗옷을 가슴까지 올려서 청진할 준비를 한다. 그 후에 순서대로 입을 벌리고 오른쪽 귀를 보여주고 왼쪽 귀를 보여준 후에 코에 힘을 주어서 코를 보기 편하도록 준비까지 해주는 센스를 발휘한다.

    그런데 가끔 내가 귀를 안 보고 넘어가거나 입을 나중에 보려고 하면 바로 주현이의 지적이 시작된다.
    “선생님, 귀 안 봤어요. 순서 틀렸잖아요!”
    “선생님, 아~ 해야지요. 안 했잖아요!”
    ‘이제는 내가 너한테까지 지적을 당하는구나.’ 이럴 때는 솔직히 이런 생각까지 들기도 한다.

    처음에는 나중에 하려고 했다고 안한 이유를 설명하려고 했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다. 이 아이의 목적은 순서에 맞춰서 진료를 해야 하는 것이기에 무조건 순서대로 진료를 해야만 한다. 그러면 다시 진료를 잘 받는 주현이로 돌아가서 얼마나 뿌듯해 하면서 진료를 잘 받는지 모른다.

    그런데 요즘 주현이가 바뀌었다. 선생님한테 지적하는 대신 진료받기 전에 자기가 먼저 순서를 말한다.
    “여보세요~(청진). 아~(구강관찰). 귀. 코. 다했다!”
    눈물없이 울어대는 울음연기 1인자로 소아과 탤런트라고 불리는 수연이.
    진료받기 경연대회가 있다면 아마 다 A+를 받을 정도로 진료받기의 베테랑인데 딱 하나 F감이 있었으니 바로 콧물을 빼는 것이다.
    수연이는 콧물 빼는 것을 싫어해서 진료실에 들어올 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는 대신, 눈웃음을 치면서 “오늘 코 안 뺄꺼예요~”라고 얘기를 하면서 들어온다.

    대부분 비염이나 축농증 때문에 병원에 오래 다닌 아이들이 콧물 빼는 것을 싫어하는 편이라 얼마나 싫어하면 이럴까 싶어서 웬만하면 하지 않는데, 증상이 너무 심한 경우에는 콧물의 성상을 확인하면서 코를 편하게 해주기 위해 콧물을 빼주고는 한다.

    수연이는 진료의 베테랑답게 숙련된 몸짓으로 능숙하게 진료를 받는데 마지막에 콧물을 빼려고 하면 갑자기 발차기의 대가로 변신을 해버린다. 시끌벅적하게 콧물을 뺀 후 울면서 엄마 품에 안겨버리는데, 엄마가 “수연아, 수연이가 발로 선생님 다리를 차서 ‘아야’하신데, ‘죄송합니다’라고 해야지”라고 얘기를 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 살짝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려 내 눈치를 살피다가 애교만점의 눈웃음을 보내면서 씩 웃어버린다. 그리고 집에 갈 때는 정중히 배꼽인사를 하고 간다.

    콧물만 빼면 발차기의 대가로 변신을 하지만 뒤끝없는(?) 수연이가 이래서 기다려지나보다.
    “오늘 코 안 뺄 거예요~.”
    대기실에서 수연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수연아! 그건 진료하고 나서 내가 결정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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