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을 불러주다… 언어의 상실, 정신의 상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꽃>중에서
이름을 불러주는 것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름을 부르는 순간 하나의 장미는 정원에 흔하게 피는 그런 장미가 아니라 어린왕자가 자신의 별에 두고온 한 송이의 장미, 물을 주고 벌레를 잡아주고 바람을 막아주던 바로 그 장미가 되는 것이다.
역사를 평가하는 데에 정명(定名)이 중요하다고 한다. 이름을 정하는 것 속에는 그 시대에 대한 후대의 평가가 들어있고 더불어 그 역사가 나아가고자 하는 지향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상병명 체계가 작년부터 바뀌었다. 바꾸는 과정에서 수많은 고민과 토론이 있었을 것이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도 못한 수많은 행간들이 있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나는 이름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견비통 환자를 볼 때 담음견비통인지, 한성견비통인지, 어혈로 인한 견비통인지는 중요하지 않아졌다.
소화가 안 되는 환자의 어깨 통증이든, 몸이 찬 사람의 어깨 통증이든 경근이 뭉친 환자의 어깨 통증이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기타 등통증으로 해야할지, 기타 근통으로 해야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허리가 아파도 마찬가지다. 신허요통인지, 한요통인지, 담음요통인지, 어혈요통인지는 이제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다. 그저 아래허리통증의 요추부로 할지, 기타 등통증의 요추부로 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근골격계 통증이 이러하니 내과 상병명은 말할 것도 없다. <소화불량> 하나로 담음복통, 한복통, 열복통, 담음위완통 등등 모든 것을 커버해 버린다. 복통으로 굳이 하고 싶다면 전반적 복통이나 상세불명 복통으로 해야 한다. 두통에서도 담궐두통, 한궐두통, 열두통 등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두통을 치고서 헤매다가 겨우 <상세불명>이나 <기타> 두통을 찾아내고 만다. 이러한 상병명을 쓰는 순간 허무함이 확 밀려든다.
물론 편해진 분야도 있다. 여성병의 경우 월경통이나 월경불순 등의 경우 대부분 변증이 유사한데 상병명은 양방적으로 상세하게 나누어져 있어서 선택의 범위가 넓어지긴 했다.
상세불명이나, 기타… 상병명을 치다가 허무해져서 동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양방에서도 주로 그렇게 상병명을 정한다고 한다. 살짝 위로가 되긴 한다. 우리보고 늘 뜬구름을 잡는다고 비판하는 양방에서 상세불명의 상병명을 잡는다고 하는 게 참 어불성설이란 생각이 든다.
한편 우리는 한의학의 변증체계 속에서 멋지게 상병명을 분류하고 그에 맞게 치료를 할 수 있는데, 왜 우리의 상병명을 모두 포기하고 말았을까 하는 비통한 생각마저 든다. 언어의 상실은 정신의 상실이 아닌가….
우리의 언어 위에 새로운 언어를 삽입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건강보험공단이나 심사평가원의 편리성이 우리의 정신보다 우선되는 것은 아닐텐데….
우리는 잃어버린 언어를 어디에서 찾아와야 할 것인가….
지금도 기타 등통증으로 할지 기타 근통으로 할지 헤매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