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연 원장

기사입력 2011.01.14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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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사 선생님이 왜 아파요?
    개원가 일기

    이번 겨울은 유난히 날씨 변화가 심한 것 같다. 겨울 외투가 무겁게 느껴질 정도로 온화한 날씨였다가 갑자기 온 세상을 꽁꽁 얼려버리려는 듯 무서운 기세로 추워져 버리니 말이다. 이렇게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면 감기로 고생하는 아이들이 많아진다. 이런 날이면 소아과에 오는 아이들도 많아지지만, 소아과 전화기에도 불이 난다. 갑자기 열이 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코가 막히고 기침을 심하게 하는데 어떤 약을 먹어야 하는지 아이 부모님들이 전화로 상담을 하시기 때문이다.

    병원 근처에 있는 아이들은 병원으로 오라고 해서 진료를 받게 하면 되겠지만, 멀리서 오는 아이들은 바로 올 수가 없기 때문에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고 어떻게 처치를 해야 하는지, 갖고 계신 한약 중에 어떤 약으로 바꿔 먹여야 하는지 부모님께 자세하게 전화로 상담을 해드려야 한다.

    소아과에는 이렇듯 감기환자가 많기 때문에 감기를 달고 살 것 같지만, 예상과 달리 감기에 잘 걸리지 않는다. 소아과 의사들이 농담반 진담반으로 하는 얘기가 있는데, 하도 많은 감기바이러스를 맛 봐서 웬만한 감기바이러스에는 끄떡도 안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신종 플루와 독감이 유행을 했을 때도 감기걱정 없이 꿋꿋하게 진료를 잘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 겨울에는 감기에 호되게 당하고 말았다. 작년 12월 초에 여러 행사와 일들이 많아서 2주 정도 쉴 새 없이 일정을 소화했는데, 마지막 일이 끝나자마자 감기몸살로 앓아눕고야 말았다. 예전에는 살짝 감기기운이 느껴지는 날이면 저녁에 한약을 먹고서 따뜻하게 자고 일어나면 다음 날 아침에 거뜬하게 일어나서 진료를 할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낮에 진료를 하기가 버거울 정도로 독하게 걸려버렸다. 춥고 몸이 아픈 것은 티가 안 나는데 목소리까지 변해버려서 어른 환자들이 “우리 선생님 감기 걸리셨네. 우리 고쳐주려면 빨리 나으셔야지요. 아프지 마세요”라고 얘기를 해주실 정도였다.

    그날 오후에 감기에 걸린 아이를 진료하고 있었는데, 아이 어머니께서 목소리가 이상한 나를 보고 “우리 선생님도 감기걸리셨나보다”라고 얘기를 하셨다. 그런데 그 얘기를 들은 아이가 진지하면서도 심각한 눈길로 나를 쳐다보면서 “의사 선생님이 왜 아파요?”라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갑자기 말문이 막힌 나는 어떤 얘기를 해줘야 하나 머리를 굴리며 다시 한번 아이의 얼굴을 쳐다봤다. 아이는 아픈 사람을 치료해주는 의사 선생님이 아프다는 것을 정말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는데, 이 표정과 함께 악당에게 진 만화 주인공을 보듯 나를 바라보는 실망스러운 표정도 느껴졌다.

    아이의 얘기를 들은 어머니께서 “선생님도 사람이니까 아플 수 있는 거야”라고 얘기를 하셨는데 이 말은 들은 아이의 표정은 더 심란해진 것 같았다. 마치 ‘인간은 아프다’라는 대전제를 가지고 고민하는 철학자처럼... 아이의 표정을 보고 더 할 말을 잃은 나는 아이의 실망스러워하는 마음에 대고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번에 악당 감기가 아주 세서 선생님이 감기한테 졌어요. 선생님이 다시 감기를 이겨서 동현이 감기도 빨리 물리쳐줄께요.”

    아이가 왔다간 후 나에게는 커다란 숙제가 생겼는데, 바로 만화 주인공이 엔딩장면에서 멋있게 악당을 물리치고 마무리를 하듯 빨리 감기를 물리쳐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난 한약을 열심히 먹고, 잘 쉬어서 감기를 똑 떼어버리고 다음 번에 아이가 왔을 때 멀쩡한 목소리로 아이에게 얘기를 했다. “동현아~ 선생님이 감기를 이기고 왔으니까 동현이 감기도 빨리 물리쳐줄께요.” 그러자 아이는 실망스러운 마음을 떨쳐버릴 수 있어서 좋았는지 자랑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면서 “네!”라고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이 아이처럼 의사 선생님이 아프다고 했을 때 실망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는 아이들이 있어서 나는 편하게 아프지도 못하겠다. 하지만 감기를 빨리 이기고 왔을 때 자랑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는 아이들이 있어서 나는 오늘도 열심히 진료를 할 수 있는 것 같다.

    선생님이 아픈 게 그렇게 실망스러웠니? 이제는 안 아프고 열심히 진료할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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