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확산되는 구제역 파동‘축산병(畜産病)’
소에 구제역이 번져 체온 상승, 식욕 부진이 생기면서 도살되는 끔찍한 일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이런 병들을 어떻게 처리했을까. 소에 번진 전염병을 뜻하는 우역(牛疫)을 조선왕조실록에서 찾아보면 중종, 영종, 인조, 현종, 숙종, 영조, 고종 등에서 194건이나 나타나고 있다.
전염병 후유증으로 생긴 피해는 엄청난 것으로 기록하였다. 예를 들면 현종 4년 실록에는 우역의 후유증을 통렬하게 기록하고 있다. 지평 윤우정이 아뢰기를 “올해 우역이 매우 참혹하게 번져 앞으로 종자가 끊길 염려가 있습니다. 일찍이 정축년에 우역이 있을 때 소를 죽인 자는 사람을 죽인 것과 똑같은 죄를 적용하기로 영갑에 기재하였으니, 지금도 이 법에 의거하여 통렬히 금하도록 하소서”하니 상이 따랐다.
지금도 우역이 번지면 도살과 소독이 전부지만 당시도 지금과 비슷한 정도의 조치가 취해졌다. 일본인이 쓴 [조선의 축산] 32p에서는 이렇게 소개하였다. “종래의 관습으로 수역이 발생하여 유행하게 하면 다른 건전한 소를 격리된 장소로 옮기고 차단법을 행하여 소의 출입을 금지한다. 또 춘하기에는 전염된 소를 들에 방치하고 생사를 하늘에 맡긴다. 격리차단의 취지는 좋다고 할 수 있으나 이 실시는 철저하지 못하여 병독을 만연시켜 그 피해를 더욱 크게 하고 있다. 또한 병든 소는 태워서 묻지 않고 흙에 파묻고 소독을 하지 않는다. 단지 뿔에 염색하고 자물쇠를 달고 고추를 달아내는 등 주술적인 방법을 신뢰하거나 지지기, 침 등을 사용하여 병독을 만연시키는 등 유치하다”라고 평가하였다.
우리나라의 농업은 소가 가장 중요한 가축이었다. 한우는 체구가 크고 성질이 온순하여 체질도 강건하였다. 특히 농번기를 맞이하면 소를 빌려 감당하기 어려운 삯을 주고서라도 농사를 지어야 하므로 수의학은 고위관리들도 관심을 갖는 중요한 분야였다.
조선의 개국 공신인 조준, 김사위, 권중화, 한상경에 의해 편찬된 ‘신편마의방우의방’은 현존하는 최고의 수의서인데 우역같은 전염병을 치료하는 몇 가지 처방들이 기재되어 있다.
직접 복용하는 처방과 태워서 향기를 맡는 처방이 각각 기록되어 있다. 직접 복용하는 처방은 석창포, 담죽엽, 갈분, 울금, 녹두, 창출을 같은 분량으로 만들어 파초의 자연즙 3되에 넣고 꿀 1냥과 황납 두돈을 함께 넣어 조제하여 먹인다. 태워서 향기로 치료하는 약물은 백출, 천궁, 세신, 창포, 여노라는 약물을 태워서 코로 향기를 맡게 한다. 소가 귀한 만큼 고가의 약물도 서슴치 않고 사용했다. 인삼 분말 73g을 물 5되에 넣어 끓인 후 따뜻하게 식힌 후 먹인다. 당시 인삼의 가격을 생각하면 사람보다 귀한 대접을 받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뜸의 처방도 있다. ‘전염병이 처음 발생할 때 두 뿔 안쪽 우묵한 가운데 피부를 침으로 절개하고 3일에 한번씩 7번 뜸을 뜨면 좋다’라고 적어놓았다. 어찌보면 무조건 도살만을 일삼는 것보다 훨씬 동물 애호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한방수의학은 누가 만들었고 어떤 원리로 진료하였을까? 한방수의학은 한의학과 같이 음양오행설을 기초로 질병의 생병리를 설명한다.
한의학의 경전인 황제내경이 황제와 기백의 문답식으로 된 것처럼, 수의학의 경전인 [원형료마집]은 황제와 마사황(馬師皇)과의 문답으로 이루어져 있다. 수의학도 사람의학처럼 그 기원이나 원리를 음양오행원리를 기초로 자연적 관점에서 설명한다. 또 황제(黃帝)로부터 그 원리적 기초를 서로 묻고 답하면서 설명한다. 속시사(續始事)라는 책에는 “황제 때에 마사황이라는 사람이 있어 신험한 듯이 말의 병을 잘 보았다. 마의는 이때부터 시작하였다” 라고 하여 마사황의 존재를 부각하고 있다.
얼마전에 왔던 환자 한분이 침 치료를 하다가 이런 말을 하였다. 개가 디스크에 걸려 치료를 받았는데 수의사분이 개 허리에 침을 놓고 단박에 회복되었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도 예전부터 소에 침을 놓는 전통 수의사들은 많았다. 그러나 전래되는 침법은 더 이상 직접 전수되지는 않았다.
소침쟁이라는 멸시 때문이었다. 정작 많은 고관대작들이 수의학에 관한 많은 책을 편찬했지만 기술 천시의 풍토가 전통침법 전승에 걸림돌이 된 것이다. 지금은 잊혀졌지만 어릴 때만 해도 소가 병들면 약초를 구해 약물을 먹이는 장면은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소를 물에 끌고 갈 수는 있지만 물을 먹일 수는 없듯이 소에게 한약을 먹이는 것은 만만한 일은 아니다. 입을 벌리고 약을 먹이는 장면은 시골에서 늘 보는 장면이었다.
이제 이런 약초를 기억하는 사람도 거의 사라졌다. 지금 기록하지 않으면 더 먼 날은 전통 수의학이 완전히 사라져 버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