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유숙 원장

기사입력 2010.07.02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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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너리티 리포트
    개원가 일기

    나른한 여름날이다. 중년의 나이로 접어드는 탓인지, 늦게까지 추운 기운이 남아있던 기후 탓인지 자동차소음에 창문을 열고 지내기 불편한 진료실에서 에어컨을 틀고 있으면 금방 콜록콜록 감기에 걸릴 것 같고 끄고 있자니 후덥지근한 날이다.

    얼마 전 ‘한의쉼터’에서 ‘아이들에게 어떤 전공을 시킬 것이냐’하는 것이 주제가 되었던 날이 있었다. 어느 원장님의 자제분이 아주 똑똑하고 실제 성적도 좋은데 어떤 진로를 선택하면 좋겠냐는 질문이 있었고 다양한 의견이 있었으나 압도적으로 양방의사가 되길 추천하는 분위기였다. 수많은 덧글 중에 한의사가 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은 두 건 정도 있었다. 그것도 아버지가 간 길을 이어서 가는 장점이 있다는 전제에서만….

    한가한 나날을 보내고 있어서 그랬을까? 평소에도 쉼터에서 그런 글들을 종종 접했지만 별로 영향이 없었는데 그날따라 마음이 무척 심란했다. 갑자기 마이너리티 인생을 산다는 것이 따분하고 분하고 한심하게 느껴졌다. 내가 한가한 탓도 있었겠지만 덧글들이 단순한 신세타령의 분위기가 아니고 정말 진지하게 느껴져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이날 한의사가 되고서 처음으로 ‘내가 왜 한의사가 되었을까’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나는 다른 대학을 다니다가 중간에 한의대에 간 경우이다. 처음 결심을 할 때는 사람 살리는 의사가 되고 싶었고 그 때의 어린 심정에 한의사가 양의사보다 더 좋은 의사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한의사가 되겠다고 생각을 했다.

    한의학에 대해서 뭐 아는 것도 없었다. 그저 한의사가 더 의사답고 환자를 인간답게 대하고, 더 좋은 사람으로 살 수 있을 것 같았고 한 번도 그 생각을 의심하지 않고 한의대에 갔다. 당시에 성적이 생각보다 잘 나와서 좋은 대학 의대에도 갈 수 있었는데 그저 한의사만 되고자 했던 내가 처음으로 어리석게 느껴지고 분했다.

    한편 한의사로서 제대로 치열하지도 못한 내가 갑자기 더욱 더 한심하게 느껴졌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토론하고 책보고 환자보고 하던 내 머릿 속 원로분들의 모습은 자꾸 지워지고, 환자 케이스마다 공부하고 처방을 고민하는 친구들의 모습은 그저 존경스러울 뿐이고, 하다못해 홍보를 위해서 동분서주 노력하는 동료들은 부러울 뿐이고, 나도 효과적이고 좋은 케이스를 모아서 논문이라도 쓰면 좋을텐데 하는 건 바람뿐인 나날을 보내는 나 자신이 반성되고 좀 노력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울한 생각도 많았지만 ‘나 자신의 자존감과 한의사로서의 자긍심과 한의원 경영을 위해서 노력해보자’하는 다소 거창한 결심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와서는 좀전의 결심은 잠시 접어두고 월드컵에서 뭐 재밌는 일 없나하고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하며 오후를 맞이했다.

    당시 북한과 브라질 경기 국가연주 중의 정대세의 눈물이 화제가 되고 있었다. 정대세의 눈물에 대한 글들 중 내 마음을 ‘쿵’ 치는 것이 있었다.
    “…경기장에 울려퍼지는 자기 나라 국가만 들어도 눈물을 줄줄 흘리는 촌스러운 스트라이커는 일본에서 마이너리티 인종으로 살다가 지구상 최악의 마이너리티 국가의 국적을 선택한 골수 마이너리티다.”(딴지일보 <외계인 팀의 귀환! 북한vs브라질>에서 발췌)

    아, 내가 오전 내내 마이너리티로서 살아가는 삶에 쓸쓸함과 분함을 느끼고 있던 차에 접한 저 마이너리티란 단어가 내 가슴을 후비고 들어왔다. 이 청년이 이런 말도 했다고 한다.

    “저는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모든 사람에게 뭔가 주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런 삶의 모습을 표현하고 싶은 꿈이 있지 않을까요. 제게는 우연찮게 ‘재일’이라는 주제가 주어졌어요. 그렇다면 그 숙명을 보듬고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죠.”(우리가 보지 못했던 우리선수(신무광 지음) 중에서)
    그는 불리한 선택들을 기꺼이 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숙명을 보듬고 그 모습을 표현하는 꿈을 꾸겠다고 한다. 지구상 거의 최고의 자본주의 국가에 살며 한국 국적을 갖고 북한팀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서 FIFA에 수많은 서신을 보낸 끝에 월드컵 무대에 선 그의 눈물을 보며 난 한 민족으로서 배부른 마이너리티로서 눈물이 흘렀다. 이 촌스러운 순수 청년 덕분에 중년의 아줌마 한의사가 정신을 차려본다. ‘한의약’이라는 주제가 내게 주어졌다고 한 번 생각해보련다. 준비하고 치열하게 살다보면 언젠가 그렇게 뜨거운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그 때가 오겠지… 그것이 비록 성공이든 실패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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