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훈 원장

기사입력 2010.05.07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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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수들에게 의무실은 크고 작은 긴장의 해방구이자 상담실”

    지난 4월 아이슬란드 화산폭발로 유럽의 하늘길이 막혔던 그 때, 필자는 덴마크에 있었다. 4월 12일부터 18일까지 열린 IIHF 아이스하키 U18(18세 이하) DivisionⅠ에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팀 닥터를 맡아서다.

    우리나라 U18 청소년 대표팀은 작년 슬로베니아에서 열린 Division Ⅱ에서 우승해 올해 Division Ⅰ으로 올라왔다. 1부 리그는 상위 16위까지의 챔피언십 리그가 있고, 나이별로 시니어(성인부), U20, U18의 경기가 있다. 한국은 그동안 Division Ⅰ에서 2년을 버티지 못했다. 다행히 지난해 U18 대회 때 한국은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멕시코, 스페인, 루마니아를 상대로 5전 전승을 해 매 경기마다 태극기가 게양되고, 애국가가 울려 퍼지고, 우승 메달에 헹가래까지 받는 벅찬 감격을 경험했었다.

    그렇지만 올해 Division Ⅰ에서의 덴마크, 노르웨이, 오스트리아, 프랑스, 일본은 워낙 강팀들인지라 전패를 면해 다시 Division Ⅱ로 내려가지 않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아시아 최강팀인 일본은 Division Ⅰ에서만 10년째라고 한다.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경기에 참여한 팀 닥터는 일체의 경비를 지원받게 된다. 시합기간 동안 선수들에게 봉사하며 얻게 될 보람 말고 누릴 수 있는 유일한 특권이라고 하겠다.

    팀 닥터는 지켜만 봐도 든든한 친형과 같은 존재

    시합기간 동안에는 의무실을 겸한 2인실의 숙소를 혼자 사용하게 됐다. 당연히 빈 베드는 치료 전용베드가 된다. 팀 닥터는 선수단 전원의 건강 관리뿐 아니라 단장, 감독, 통역을 비롯한 임원들과 어린 선수들 사이에서 중간 가교 역할을 해야 하기도 한다. 그래서 의무실은 필승의 중압감으로 구성원들간에 빚어지는 크고 작은 긴장의 해방구이자 상담실이 된다. 물론 의욕이 너무 앞서 의무실 개방시간이 많을수록 팀 닥터에게 휴식은 없다.

    명색이 대표팀이지만 선수들은 스스로 스트레칭이나 워밍업에 대한 자각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나이와 경험 탓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부상을 운으로 돌리는 이른바 고교 엘리트 체육의 현주소이기도 하다. 앞날이 구만리인 어린 선수들의 부상 예방을 위해서는 코치나 지도자의 도움을 반드시 필요로 하고, 제대로 된 예방법과 몸 풀기를 팀 닥터로서 조언해 줄 필요가 있다.

    다만 필자의 경우처럼 부탁이 있을 경우에 수락해서 맡게 되는 것은 어디까지나 코치나 트레이너의 역할을 대행해 주는 것일 뿐, 엄밀하게는 의료 지원인 팀 닥터 본연의 임무와는 구분될 필요가 있다. 지상훈련이든 연습이든 함께하는 시간이 많으면 빨리 유대감이 생기고, 가족과 떨어져 처음 국제경기를 경험하는 선수들에게 있어 팀 닥터는 지켜만 봐도 든든한 친형과 같은 존재일 수 있겠다. 결국 그들이 수년 후 지도자가 되어서도 한의사 팀 닥터를 기억할 것이고 링크장 바깥에서도 한의사의 진료를 희망할 것이다.

    침·추나·수기 치료는 통증 개선 만족도 높아

    의료가방을 옆에 메고 선수들과 연습과 경기 일정을 소화해내다 보면 하루가 순식간에 지나간다. 전술적인 body checking으로 펜스에 어깨를 부딪치거나, 퍽이나 스틱이 허벅지, 목, 팔꿈치 등 보호 장비 사이를 가격해 생기는 타박상이 흔하다. 특히 스틱을 잘못 가격하거나 상대 스틱에 맞아 생긴 고질적인 손목 통증과 하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한 허리의 만성적인 근육통이 많다.

    의무실이나 대기실에서야 약물, 침, 추나, 테이핑을 시술하지만 링크장에서는 파스, 냉각스프레이, 아이스 팩을 주로 사용하는데, 진통제를 쓸 수 없는 상황에서는 침 치료로 즉각적인 통증 개선을 보이고 추나와 수기치료는 만족도가 높아 선수들 전원이 각자 필요한 부위에 시술받다시피 했다. 치료를 받아 본 선수나 스텝들이 다시 찾아와 자신이 먼저 침 치료를 희망할 때는 한의사로서 자긍심을 느낀다. 침술·추나·테이핑 치료는 약물에 대한 도핑이 강화될수록 스포츠 현장에서 더욱 강력하고 적극적인 무기가 될 수 있음은 자명하다. 호기심과 경외감으로 침술 치료를 지켜보던 유럽의 선수와 관계자들은 그들이 목격한 ‘꼬레아’의 전통의술을 오래 기억할 것이다.

    몸을 사리지 않는 투혼으로 오스트리아와의 경기에서 20분씩 3피리어드를 3:3으로 선전하며, 10분 연장피리어드까지 모두 사용하고도 승부가 나지 않는 박빙의 경기를 펼쳤다. 결국 승부샷(축구의 승부차기와 같은 개념)에서 2:1로 드라마를 만들어 내 한국팀은 U18 역사상 Division Ⅰ에서 첫 승리라는 명예를 쥐었다. 전패한 세계 랭킹 13위의 오스트리아가 Division Ⅱ로 내려갔다. 한국과 일본은 Division Ⅰ에 잔류하는 목표를 달성했다.


    적극적인 참여로 스포츠 한의학 지평 넓혀야

    며칠 뒤에는 슬로베니아에서 경기 중이던 성인부 국가대표팀도 랭킹 27위의 크로아티아를 제물로 삼아 역시 Division Ⅰ에서 최초로 1승을 거두었다. 이 결과로 현재 33위인 한국 아이스하키의 세계 랭킹을 끌어올리며, 2011년 7월에 최종 선정되는 2018 동계올림픽의 평창 유치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또한 향후 25위 이내에 진입하면 올림픽 출전권도 받게 된다. 이는 또한 한의학을 올림픽 무대에서 펼쳐 보일 종목이 늘어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국제경기에서 팀 닥터를 경험하는 것은 스포츠 현장에서 근골격계 응급의료와 재활치료로서의 한의학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배구, 배드민턴, 아이스하키, 핸드볼, 태권도, 야구 등 다양한 종목에서 많은 선배님들이 한의학의 실효성을 현장에서 직접 검증해 보이고 있으며, 일부 종목은 의무위원장으로 활동하시는 만큼 체육계에서 이미 한의사의 입지는 굳건하다.

    게다가 도핑교육을 비롯한 현장에서 실용적인 교육프로그램이 스포츠한의학회 주관으로 매년 제공되고 있다. 선배님들이 헌신으로 다져놓은 토양을 기반으로 꿈을 펼치는 한의사들이 계속 늘어나 스포츠 한의학의 지평이 더욱 넓혀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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