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현 한의사

기사입력 2010.03.12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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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뭔가 의미있는 일들만이 봉사활동의 전부는 아니다
    빨래와 같은 보잘 것 없는 일도 묵묵히 하는 것이 봉사

    지구촌 한의학 旅行 19

    일찍이 식민지 인도의 수도로 대영제국에서 런던 다음의 번영을 누렸던 도시, 캘커타. 모든 지명을 대대적으로 힌두어로 개명(改名)하는 정책으로 인해 지금은 ‘꼴까따’라고 불리는 이곳은 옛 식민지 수도가 누렸던 부귀영화의 잔재와 그 사이를 누비고 다니는 인도인들이 뒤섞여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으뜸 도시의 자리를 박탈당하고 난 뒤 정치는 델리로, 경제는 뭄바이와 뱅갈로르 등의 남부로 넘어가버려 이제 이곳은 가난하고 복잡하며 공기 오염이 심각한 도시로 그 이름을 알리고 있다.

    특이한 이력을 지닌 도시이니만큼, 이곳을 방문한 이들의 생활도 여느 여행자들과 조금 다르게 시작된다. 늦잠자기 일쑤인 게으른 여행자들도 6시 반이라는 이른 시각에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향하는 그곳은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사랑의 선교회, 속칭 ‘마더하우스’이다. 그곳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마더 테레사 수녀가 세운 단체로서 워낙 유명하기도 하거니와 복잡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봉사를 할 수 있어서 세계 각국에서 온 단기 여행자들과 장기 봉사자들로 항상 붐빈다.

    졸린 눈을 비비며 마더하우스에 도착하면 우선 봉사자들을 위해 준비된 밀크티와 빵, 그리고 바나나로 아침을 해결할 수 있다. 이어서 짧은 기도와 노래를 부른 후 봉사자들은 각자 자신이 봉사하는 센터로 향하게 된다. 마더하우스는 크게 장애인과 노인들을 돌보는 프렘단, 복합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돌보는 다야단, 병자들과 노인들을 돌보며 ‘죽음을 기다리는 집’으로 잘 알려진 깔리가트, 버려진 아이들과 미숙아들을 돌보는 쉬슈바반의 4개의 센터로 나누어진다.

    센터에서 하는 일은 사실 단순하다. 단기 봉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빨래를 헹구고 너는 일, 그리고 사람들에게 식사를 나누어주고, 먹여주는 일이 전부이다. 다야단 같은 곳에서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도 하긴 하지만, 그것은 대부분 숙련된 수녀님들과 몇 개월 경력이 있는 장기봉사자들의 몫이다. 필자는 다야단과 깔리가트에서 일을 도왔는데, 역시 실제로 상주하는 노인,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사실 이것이 일부 봉사자들이 가지는 불만이다. 뭔가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 왔는데, 또는 노인,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왔는데, 빨래만 하다가 돌아가는 것 같다는 것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의미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흔히 봉사활동 모집 포스터를 보면 죽어가는 아이를 안고 있는 사진이라던가 비쩍 마른 노인들과 부둥켜 안고 눈을 맞추고 있는 ‘자극적인’ 사진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아마 그런 활동들을 말하는 것일 게다.

    사실 필자도 처음에는 빨래가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크다고 생각했었고, 아직까지도 그런 포스터 같은 ‘튀는’ 활동에 대한 미련을 다는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런 튀는 일을 하고 싶어하는 마음은 자신이 주인공이 되고 싶은, 즉 ‘나’에 집착한 생각의 결과가 아닐까 한다. 나에 집착한 봉사활동은 수혜자가 아닌 스스로를 위한 것이며, 이런 생각에 기초한다면 빨래를 하고 있든, 죽어가는 아이를 안고 있든 끊임없이 무언가 모자람을 느낄 것이다.

    ‘내 자신이’ 멋진 일을 하고 싶은 갈망, 멋지게 보이고 싶은 갈망은 끝이 없기 때문이다. 껍데기 같은 마음으로 임한다면 자신이 얻는 결과도 껍데기 같을 수밖에 없다. 진정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마음이란 빨래처럼 일반적으로 하잘 것 없다고 여겨지는 활동도 보잘 것 없다 생각 않고 묵묵하고 꾸준히 해나가는 것이 아닐까 한다.

    사실 빨래도 사람들을 보살피는 일 못지않게 동등하게 중요한 활동이다. 노동력이 많이 들며, 매일 해두지 않으면 센터의 일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원한다면 시간을 내서 아이들, 노인들과 교류도 할 수도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 아닌가 한다.

    긴 기간은 아니었지만, 꼴까따에서 봉사하면서 지낸 시간은 정말 즐거웠다. 상업영화에서부터 예술 영화까지 다양한 영화도 마음껏 볼 수 있었고, 음식도 싸고 맛있었으며, 여행자 거리는 푸근함을 느끼기에 충분해, 심각한 공기 오염만 제외한다면 도시 그 자체로서도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그 생활이 즐거웠던 것은 아마도 마더하우스를 둘러싼 긍정적 에너지 덕분이 아니었나 싶다. 그 속에서 내가 만난 사람들은 모두 잘 웃고, 서로를 배려했으며,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특성상 여행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항상 떠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짧은 기간 함께 했음에도 헤어질 때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릴 정도였으니 말이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풍경이 아름다운 곳들도 물론이지만,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좋았던 곳이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것 같다. 이제까지 중동, 유럽, 인도 등 세계 방방곡곡에서 좋은 사람들을 셀 수 없이 많이 만났다. 한 달여 남은 여행기간 동안,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나의 긴 인생에서도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기를, 그리고 내가 그런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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