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是以聖人常善救人, 故無棄人, 常善救物, 故無棄物. 是謂襲明.
故善人者, 不善人之師, 不善人者, 善人之資. 不貴其師, 不愛其資, 雖智大迷, 是謂要妙.
성인은 언제나 사람을 잘 구하기 때문에 사람을 버리는 일이 없고, 언제나 물건을 잘 구하기 때문에 물건을 버리는 일이 없으니 이를 일컬어 ‘밝음을 지니고 있다(襲明)’고 한다. 여기서 ‘구인(救人)’이란 사람을 구한다는 뜻인데, 이때 ‘사람(人)’은 착한 사람, 나쁜 사람을 구별한 사람이 아니라 착한 사람이나 나쁜 사람을 가리지 않는 모든 사람을 말한다.
따라서 ‘구인(救人)’은 사람을 가려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가리지 않고 다 받아들인다는 말이다. 또한 ‘구물(救物)’도 마찬가지다. 좋은 물건, 나쁜 물건을 가리지 않고 모든 물건을 다 받아들인다는 말이다. 쓸모가 있거나 쓸모가 없거나를 가리지 않고 모두 받아들인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은 사람을 버리는 일이 없고(無棄人), 물건을 버리는 일이 없다(無棄物).
이것을 일컬어 밝음[明]을 지니고 있다[襲]고 한다. 밝음을 안다는 말이다. 명[明]은 해와 달이 합한 글자로 해와 달이라는 두개의 광원(光源)이 합했으므로 ‘밝음’을 뜻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보통이지만, 여기서는 해로 대표되는 양(陽)과 달로 대표되는 음(陰)이 합해서 불이(不二)의 조화스런 관계(co-incidentia oppositionrum)를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따라서 ‘습명(襲明)’이란 사람이나 사물을 구할 것, 버릴 것으로 이분하는 대립적 의식구조에서 탈피하여 이 둘을 불가분(不可分), 불가결(不可缺)의 하나로 보는 전일적(全一的) 안목의 획득을 아울러 뜻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잘하는 사람은 잘하지 못하는 사람의 스승이고, 잘하지 못하는 사람은 잘하는 사람의 감[資]이 되니, 그 스승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감이 되는 것을 사랑하지 않으면 비록 지혜가 있다고 하나 크게 미혹한 것이니 이를 일컬어 무위자연의 진리라 한다.
여기서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 잘하는 사람의 감[資]이 된다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 잘하는 사람, 착한 사람이 잘하지 못하는 사람, 착하지 않은 사람을 보고 나는 저러지 말아야겠다고 자신을 돌아보는 바탕[資]으로 삼는다는 말이다. 그러니 잘못하는 사람이 잘하는 사람의 스승이 된다. 공자는 “삼인행(三人行)이면 필유아사(必有我師)”라 하지 않았나? ‘반면교사(反面敎師)’하란 말이다.
잘못하는 사람은 잘하는 사람을 ‘정면교사(正面敎師)’로 하는 것이 ‘선인자(善人者)는 불선인지사(不善人之師)라’ 한 것이다. 그러니 서로가 스승이 되는 것이다. “스승을 귀하게 여기고(貴其師) 도움되는 사람을 사랑하라(愛其資)”는 말씀은 결국 두 가지를 따로 얘기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라는 말씀이다. 그렇지 않으면 비록 안다고 하나 크게 헛갈리는(雖智大迷) 것이란 말이다. 이를 일컬어 ‘오묘한 신비(要妙)’라고 했다. 무위자연의 진리가 있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