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夫惟不爭, 故天下莫能與之爭.
古人所謂曲則全者, 豈虛言哉. 誠全而歸之.
이 세상에 대적할 사람이 없다. 그게 힘이 세서 그런 것이 아니다. 남과 싸우지 않으려 하여도 세상은 끊임없이 나에게 싸움을 걸어오고 있다. 싸움은 대꾸를 하고 상대를 해야 벌어진다. 그런데 걸어오더라도 맞고 피하면 싸움이 되지 않는다.
“좌기예(挫其銳)하여 해기분(解其紛)하라”고 한 노자의 말씀을 기억해 보라. 도(道)를 지니고 사는 사람은 그러니까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사람은 일체가 다 나와 하나이니까 누구하고 상대할 상대가 없다. 그 어떤 것에도 걸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다. 원융무애(圓融無碍)한 자리에 있으니 어디 걸릴 것이 있겠는가? 때로 세상이 도승(道僧)이나 사도(使道)의 목숨을 뺏는 수는 있어도 그들의 ‘아버지 모심’ 그 자체를 빼앗지는 못한다.
스테파노가 웃으면서 죽고, 이차돈이 미소 짓는 얼굴로 목이 잘리고, 천주교 성인들이 절두산에서 소리 없이 죽고, 민주화 열사들이 총부리를 맞대 죽어갔다. 그런 상대하고는 도무지 싸움이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목숨을 빼앗을 수는 있을지언정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도(道)를 꺾을 수는 없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하고는 이 세상에 누가 그 사람과 더불어 싸울 사람이 없다.
그러니까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굽으면 온전하다”고 한말이 결국 거짓말이 아니란 말이다.
이 귀(歸)는 이 장(章)의 결귀(結句)가 된다. 여기서 ‘성(誠)’은 ‘진실로’란 뜻이고, ‘전(全)’이란 이것과 저것으로 나누어지지 않은 옹근 것을 말한다.
‘이이불이(異而不二)’, 다르지만 둘이 아닌 하나의 세계다. 이렇게 둘이 아니라 하나[全]라고 하면 ‘하나’라는 말에 사로잡히게 되는데 이것 역시 병폐다. 그러니 다시 ‘비일(非一)’이란 말을 덧붙일 수밖에 없다.
‘귀지(歸之)’란 도(道)로 돌아가란 말이다. 여기서 ‘지(之)’는 도(道)를 대신한 대명사다. 도(道)로 세상을 보면 삼라만상(森羅萬象)이 각기 다르지만 모두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