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중기 瀉火를 위주로 치병한 儒醫
『承政院日記』는 承政院에서 처리한 공무를 기록한 기록으로서 현재 인조 1년(1623년)부터 1910년까지의 기록이 남아 있다.
본래 조선 전기의 기록이 남아 있다가 임진왜란 때 몽땅 타버렸고 그 이후의 기록도 여러 차례 화재 등으로 인해 잣은 보수를 해야만 하였다.
놀라운 것은 『承政院日記』에 의학 관련 기록이 매우 풍부하다는 것이다. 특히, 그 기록의 상세함은 『朝鮮王朝實錄』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 사용된 처방이 구체적이며 혈자리의 경우에도 상세하게 거명되고 있다.
앞으로 조선 후기 한의학사 연구의 중요한 소스가 될 수 있는 사료로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이 일기에 광해군부터 인조 말년까지 궁중에서 활동한 崔得龍이라는 御醫가 나온다. 그는 武官의 집안에서 태어나 광해군 때 의과고시에 합격하여 御醫로 성공하였다. 그는 궁중에서의 능력을 인정받아 嘉義大夫까지 승진하게 되어 儒醫가 되었다.
『承政院日記』의 醫案記錄을 분석해 보면 그가 瀉火에 대해서는 일가견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639년 8월17일 기록에 따르면 인조의 煩熱과 脹滿을 肝火로 진단하여 淸肝湯과 辰砂五 散을 사용하고 있고, 같은해 9월16일에는 惡寒煩熱에 人蔘羌活散, 10월18일에는 潮熱咳嗽에 柴胡四物湯, 10월25일에는 夜間熱候에 坎 旣濟丸과 淸心補血湯, 11월9일에는 感冒, 亂, 脹滿 등 증상이 반복되는 것을 보고 平胃散加減方 등을 사용한 것은 그가 각종 발열성 질환에 특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조선 중기 열성병을 진단, 치료한 崔得龍을 통해 이 시기 한국한의학의 한 갈래를 가늠해볼 수 있게 된다.
◇최득룡에 대한 기록이 나오는 승정원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