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恍兮惚兮, 其中有物. 窈兮冥兮, 其中有精, 其精甚眞, 其中有信.
自古及今, 其名不去, 以閱衆甫, 吾何以知衆甫之然哉, 以此.
없으면서도 있는 것 같되 그 가운데 형상 즉 모양이 있고, 있으면서도 없는 것 같되 그 가운데 사물이 있다는 말이다. 여기서 ‘상(象)’은 겉으로 나타난 모습이고, ‘물(物)’은 속에 들어 있는 본질이다.
여기서 ‘요(窈)’는 ‘그윽할 요’자로 깊고 고요함을 뜻하고, ‘명(冥)’은 ‘어두울 명’자로 어두컴컴하다는 뜻이다. 그윽하고 어두컴컴하여 그 가운데 정신이 있으니 그 정신은 지극히 참되어 그 가운데 성실함이 있다는 말이다. 여기서 ‘정(精)’은 알맹이를 말한다. 모든 물질의 근원이다. 청(淸)·탁(濁), 음(陰)·양(陽)이 아직 분화되기 이전의 근원(根原)이다.
동한(東漢)시대 철학자 왕부(王符, 약 85~162)는 그의 저서(著書)인 『잠부론(潛夫論)』에서 상고시대, 태소(太素) 때에 원기는 그윽하고 어두워 아무런 형체나 조짐도 아직 없었다. 갖가지 정(精)이 합하고 뒤섞여 하나가 되어 그것을 제어하는 것은 없었다(上古之世, 太素之時, 元氣窈冥, 夫有形兆, 萬精合幷 混而爲一, 莫制莫御)라고 하여 정(精)이 만물의 근원이 됨을 설명하였다.
왕부의 정(精)은 도(道)의 또 다른 이름이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정은 도의 다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도는 모든 곳에 다 있다. 무소부재(無所不在)하다. 없는 곳이 없다는 말이다. 그 도를 하느님 아버지라 해도 좋고 성령이라 해도 좋다. 하느님이 하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곳에나 다 있듯이 도 또한 없는 곳이 없다.
있는 것 같으면서도 없고, 없는 것 같으면서도 있는 게 바로 도의 실체인데 그 가운데 ‘상(象)’도 있고 ‘물(物)’도 있고 ‘정(精)’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늙은이는 여기서 덕(德)의 모습을 이야기 하면서 도(道)의 유기적 통일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정(精)은 만물을 생성하게 하는 생명의 근원, 생명력, 생명의 본질로 한의학에서는 이를 정기(精氣) 또는 원기(元氣)라고 부른다.
태고적 옛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이름이 사라지지 아니하여 만물의 근본을 다스리고 있으니 나는 무엇으로써 만물의 근본이 그러함을 아는가? 이로써 안다 하였다. 여기서 말한 그 이름이란 도(道)를 말하는 것이다.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해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그 도라는 이름이 아주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없어지지 않고 내려오고 있다. 이것은 도가 만물의 근본이 되기 때문이다. 만일 도가 그렇지 않다면 도라는 이름은 이미 사라져 없어져 버렸을 것이다. 이로써 나는 도가 만물의 근본으로써 그러함을 안다. 여기서 ‘열(閱)’은 살핀다는 말로 다스린다는 뜻이고, ‘보(甫)’는 시작, 처음이라는 뜻이 있어 ‘비롯함’을 뜻한다. 따라서 ‘중보(衆甫)’라고 하면 만물[衆]의 비롯됨을 말하고, ‘열중보(閱衆甫)’라고 하면 만물의 근본(비롯됨)을 다스린다는 말이다. 왕필(王弼) 본(本)에는 ‘연(然)’이 ‘상(狀)’으로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