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구촌 한의학 旅行 6
터키 서부 에게해 근처에 ‘에페스’라고 하는 유명한 유적지가 있다. 사도 바오로가 선교를 펼친 곳일 뿐만 아니라 아름답게 남아있는 로마 건축물들로 인해, 성지순례 온 사람들뿐 아니라 일반 여행자들에게도 필수코스로 여겨지고 있는 곳이다. 숙소에서 수 킬로미터 떨어진 곳이라 필자는 자전거를 빌려서 둘러보기로 했다. 구경을 마치고, 갈 때와 다른 길로 돌아가고 싶어서 지도에도 없는 길을 택해 페달을 밟았는데, 길이 점점 좁아지더니 알 수 없는 곳으로 이어지는 것이었다.
나뭇가지로 아무렇게나 만들어놓은 다리를 지나자, 거짓말처럼 큰 공동묘지가 나타났다. 이상하게 편안한 기분이 들어 두어 시간 그곳에 앉아있다가 돌아온 기억이 있다. 여행을 다니면서 이렇듯 항상 관광지만 들르게 되지는 않는다.
패키지 여행이 아닌 배낭여행인 이상 자의든 타의든 이런 일들은 자주 일어나게 된다. 이렇게 만나게 되는 여러 장소들 중에서 필자는 이런 무덤과 폐허를 자주 보게 되는 것 같다. 자주 보게 된다기보다는 어쩌면 끌린다고 해석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무덤과 폐허는 ‘끝’을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지금 나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그렇게 아등바등 사는 것일까? 공동묘지에 묻혀있던 그 사람들도 생전에 우리처럼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살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저렇게 묻혀서 지금은 아무 말이 없다. 화려한 무덤도 있고, 테두리마저 쌓지 못한 무덤도 있었다.
돈이 많은 사람도, 권력이 있었던 사람도, 그 반대인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묘가 적어도 천개는 있을 법한 큰 공동묘지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곳에 앉아있던 두어 시간 동안 어느 쪽에도 참배객은 찾아오지 않았다. 사람들이 말하는 부와 명예가 결국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 사람들은 무엇을 원하면서 살아가고 죽어갔을까? 필자는 사람들이 가장 원하고 행복을 느끼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았을 때라고 생각한다. 부와 명예를 추구하는 것은 어쩌면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이 현대식으로 표현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중동여행을 하면서 가장 감명을 받은 것은 바로 존재 자체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살아있다는 점이었다. 처음 본 외지인임에도 불구하고 불러서 차와 음식을 대접하고, 어디서 왔고 무엇을 하는지 묻고, 여행길의 안전을 빌어주는 사람들이 아직 남아있는 이 곳. 외지인에게 뿐만 아니라 자기들끼리도 길에서 서로 인사하고, 일이 끝난 저녁에는 찻집에 모여 앉아서 이웃끼리 이야기를 나누는 이 곳. 물론 이 사람들의 행동이 정답은 아니고 때때로 좋지 않은 요소들도 내포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타인에 대한 순수한 관심이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스스로 정이 많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필자는 그 정이라는 것이 사회에서 꽤나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서 사람 사귐은 학연, 지연처럼 사회에서 출세하기 위한 방편, 즉 ‘연줄’로서 자리잡은 지 오래이다.
인간관계도 ‘스펙’이다. 즉, 서로에 대한 진정한 관심은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아있는 것이다. 같은 동네에 살아도 서로 인사조차 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며, 조금이라도 더 이득을 보려고 하는 행동이 우리 사회에서는 이미 일반적이다.
진정한 인간관계는 사라지고 답답한 마음이 쌓이고 쌓여 우리나라 사람 특유의 질병인 ‘화병’이 생겨난 것처럼, 사람의 병은 근본적으로 마음에서 오는 것이며, 우리들의 마음은 진정한 관심을 원하고 있다. 한의학은 마음과 몸을 하나로 보고 치료하는 장점을 가지고 있으며, 사람들이 한의원을 오는 이유 중의 하나가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처럼 진료방식 역시 좀 더 인간 친화적이다. 이러한 점을 살려 앞으로 더욱 사람을 이해하고, 진정으로 치유할 수 있는 한의학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