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현 한의협 역사편찬위원

기사입력 2009.07.07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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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국지사 海網 엄주신(嚴柱信, 1890. 4.15~1973. 8.28)

    海網 엄주신 선생은 1890년 4월15일 경남 함안군 칠원면 구성리 728번지에서 嚴順業씨의 次男으로 출생하였다.
    1914년 3월20일 의생 면허를 취득하고 당시 헐벗고 굶주리며 병마에 시달리던 많은 환자들에게 인술을 폈다.

    일제시대에 非위생적인 생활습관으로 인해 이질·설사 등의 환자가 급증하였을 때 일본 의사에게 치료받던 환자들은 거의 사망하였으나, 그에게 치료를 받았던 환자는 모두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 西部 慶南에서는 아주 용한 한의사로 소문이 났고 구름 같이 몰려온 많은 환자들을 치료하여 살려냈다.

    1919년 3월24일 당시 30세의 醫生(韓醫師) 신분으로 함안군 칠원면(漆源面)에서 손종일(孫鐘一), 박경천(朴敬天), 윤형규(尹兄珪) 등과 함께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계획했다.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제작하는데 필요한 한지(韓紙)를 약봉지를 만든다는 핑계로 다량 구입하여 태극기를 제작하고 칠원읍 장터에서 1000여명(倭警 추산 800여명)의 군중을 규합 선도하며, 시위를 주도하였다.
    4월3일에도 장터에서 태극기를 높이 들고 독립만세를 선창하며 1300여명(倭警 추산 1000여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시위를 선도하다가 일본경찰에 체포되었다.

    同年 5월20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형을 언도받았으나 ‘내 나라를 찾기 위한 것이 어찌 罪가 될 수 있느냐’ 하면서 항소하였다.
    그러나 6월10일 대구복심법원(고등법원) 형사1부에서 기각되어 8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1973년 8월28일에 영면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 4월13일에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고, 2001년 7월27일에는 국가유공자로 추서하였다. 2002년 10월 31일에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제2묘역(No.1015)에 移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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